[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국민의 주거복지를 위해 설립된 주택금융기관 한국주택금융공사(HF)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위기를 겪고 있지만 이들 기관에 대해 정부가 내년 단 한푼도 출자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로드맵이 부재한 상황에서 역대급 '세수펑크'가 2년째 이어지며 주택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더하는 대목입니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설립목적을 고려해 지속가능한 보증 시스템 유지를 위해 선심성 정책보다는 출자를 통한 건전성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강준현 민주당 의원실과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인 맹성규 민주당 의원실이 주금공과 HUG로부터 받은 '2024~2025년 예산안' 자료에 따르면 두 기관의 내년 정부 출자는 '0원'이었습니다. 주금공과 HUG는 올해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가 평가대상으로 삼은 11개 정책금융기관 가운데 주택금융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입니다.
주금공·HUG '출자 없음'…정부 "양호"
(그래픽=뉴스토마토)
주금공은 지난해 지분 59.8%(1조6358억원)를 보유한 정부와 36.3%(9950억원)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 한국은행으로부터 각각 1668억원, 2300억원을 출자받았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올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정부 및 주요 주주의 출자는 없습니다. 주금공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가 정부 예산을 심의·편성하는 기획재정부에 출자 예산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에 관해 "출자라는 게 늘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며 "지난해에 출자가 있었던 것은 한시적으로 특례 보금자리론을 1년간 공급함에 따라 주택저당증권(MBS) 발행량이 늘어 지급보증 배수 관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은행 출자도 당분간 요원합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유동성 문제가 아니면 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규제도 조이는 상황이라, 주금공에 추가 출자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HUG도 주금공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연초 소관부처인 국토교통부가 기재부에 6000억원 출자 예산을 요청했으나,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습니다. HUG 현금 출자 심의를 담당하는 기재부 관계자는 "국토부가 올해 5월 말 급증한 대위변제액에 따라 기재부에 현금 출자를 요구했으나, 7~8월 대위변제 규모가 5월 말보다는 수준이 덜 하다는 판단에 자구 노력 방안을 다시 가져왔다"며 "작년에 국토부와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4조원 규모 한국도로공사 주식 현물출자를 한 데다 올해 HUG가 신종자본증권 발행, '든든 전세 주택' 추진 등 자본 보강에 도움 되는 계획을 세워 추가 출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허리띠 조여매며 버티는 주금공·H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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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판단과 달리 주금공과 HUG 두 곳 모두 전세보증 사고 증가와 함께 재정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입니다. 주금공의 전세 보증 대위변제 금액은 연말 6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금공이 위탁 운용하는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부채비율은 2019년 5.71%에서 지난해 10.18%로 2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보증 외 보금자리론 등 주금공 고유사업에 대한 주금공의 부채비율도 203.72%에서 647.60%로 3배 이상 치솟았습니다. 지난해 금융기관 출연금 증감분을 반영하지 않은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AUP) 기준 고유계정과 기금계정을 더한 당기순이익은 -3755억원으로, 전년(-282억원) 대비 손실 규모가 3473억원 늘었습니다.
HUG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지난해 HUG의 전세 보증 대위변제액은 3조554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3년 사이 약 7배 늘어난 수준입니다. 반면 회수 금액은 5088억원으로, 전체 대위변제액의 14.31%에 불과합니다. 그 결과 HUG는 해당 기간 3조8598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설립 이후 최대 적자가 발생하며 2년째 주주 배당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채비율은 전년(35.35%) 대비 81.54%포인트(p) 증가한 116.89%까지 치솟았습니다. 올해 대위변제액 규모는 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금공과 HUG는 2년 연속 기재부의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 각각 '보통(C)'와 '미흡(D)' 등급을 받았습니다. 정부 및 기재부의 정책 판단에 따른 결과입니다.
주금공과 HUG는 자구책을 통해 상황을 헤쳐나가겠다는 방침입니다. 주금공은 '한국주택금융공사법 제31조'에 따라 자본 대비 최대 50배까지 MBS를 발행할 수 있는데, 건전성 유지를 위해 40배 내외에서 지급 보증 배수를 유지한다는 계획입니다. 주금공이 국회에 제출한 '2025년 예산안 및 기금 운용 계획안 주요 사업 설명자료'에 따르면 주택신용보증기금 예산을 지난해(4조8971억8900만원) 대비 1.8%(880억2700만원) 줄인 4조8091억6200만원으로 요구하는 등 허리띠를 조여 맸습니다.
HUG는 자본 확충을 위해 이달 중 금리 3~4% 신종자본증권을 5000억원 이상 발행할 계획입니다. 올해 3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HUG가 공시한 '2023년도 국정감사 지적사항 및 조치실적'을 보면 HUG는 지난해 국감 이후 감정평가 추천제 등을 도입했습니다. 재무건전성 개선 및 무자본 갭투자 근절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연말까지 대위변제 추이를 감안해, HUG의 법적 보증 배수 90배를 넘길 것으로 전망되면 2025년 3월 결산 전 기재부가 예산을 다시 편성하거나 현물 출자 등을 실시할 가능성도 점쳐집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 회원들이 지난해 8월 인천지방검찰청 앞에서 사기, 부동산 실명법 위반, 공인중개사 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돼 2심에서 감형을 받은 건축업자 A 씨와 공모자들에 대한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정부 역시 2년 연속 세수 펑크가 확실시되는 등 곳간이 비어가고 있는 실정이라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려 목소리가 나옵니다. HUG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 반도체 산업까지 중국에 밀리고, 트럼프 당선으로 관세 및 미군 주둔비까지 오를 것이라 당분간 정부의 주택 자금 현금 출자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주금공이나 HUG 설립 목적이 '서민 주거 안정 지원'인 만큼 정권에 따라 선심성 정책 또는 규제를 펴기보다 현물 출자 등을 통해서라도 정책 유지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배광환 사단법인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는 "정부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금이 크게 덜 걷히면서 '기금 돌려 막기'에 나선 상황에 현금 출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겠냐"며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도 20%가 깨진 데다 무주택 서민을 위한 저금리 대출 기조도 자주 바뀌면서 국민 신뢰를 잃은 상황이라 추가적으로 정책 자금을 더 투입하기는 곤란할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정책 자금에 대한 중장기 로드맵(방향)을 설정해 금융 및 부동산 시장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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