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윤금주 수습기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여파로 쿠웨이트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의 감산 도미노가 시작되면서 유가 쇼크는 물론, 세계 경제 전반에 이른바 'S(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중동 국가들의 원유 공급 감소가 본격화하면서 국제유가는 단숨에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 치솟은 유가가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을 동시에 촉발해 스태그플레이션을 부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경제 역시 중동 사태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위협하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불장(증시 호황)'을 이어가던 국내 증시는 폭락했습니다. 중동발 악재에 실물경제 전반의 충격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 역시 초비상 모습입니다.
중동 주요 산유국 감산에 국제유가 '폭등'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100달러 돌파는 물론, 장중 한때 110달러도 넘어섰습니다. 실제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전일보다 16.19% 상승한 배럴당 107.70달러를 기록한 가운데, 장중 28% 뛴 배럴당 119.50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전일보다 18.98% 상승한 108.15달러를 기록, 한때 31% 급등한 119.48달러까지 찍었습니다. WTI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 충격이 벌어진 2022년 7월 이후 처음입니다.
국제유가 급등 배경에는 글로벌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중동 주요 산유국들이 잇따라 감산에 나선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쿠웨이트는 원유 저장 시설이 한계에 가까워지면서 감산에 돌입했고, 이라크 역시 지난주 일부 원유 생산 중단에 착수했습니다. 여기에 이날 이란 전문가회의가 3대 최고지도자로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선출하면서 전쟁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이스라엘군이 이란 유류고 30곳을 공습한 점도 유가에 반영됐습니다.
현재 중동 정세 불안은 에너지 가격 전반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면서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동반 상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유가 급등은 세계 경제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를 자극하는 가운데,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성장둔화 가능성까지 커지면서 시장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마저 나옵니다. 특히 미국의 2월 비농업 일자리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면서 미 고용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냉각, 스태그플레이션 진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환율 1500원 위협·코스피 서킷브레이커 발동…금융시장 '휘청'
중동 긴장 고조로 한국 경제도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유가 급등에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고, 코스피·코스닥 지수는 급락하며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중동 전쟁 장기화 전망 속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도 불가피하다는 관측입니다. 한국 역시 스태그플레이션 사정권에 들어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실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내 주유소 기름값도 2000원 돌파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고유가는 한국 경제 전 분야에 입체적인 충격을 주는 악재로 꼽힙니다. 한국의 석유 수입 의존도는 100%로, 202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1위입니다. 유가 상승은 석유류 가격을 통해 곧바로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유가가 오르면 기업의 생산·운송 등 각종 경제활동 비용이 높아지는데, 이런 비용이 최종 소비자물가로 전이되기 때문입니다.
유가 급등에 원화 가치 하락도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9.1원 오른 1495.5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주간 종가 기준으론 지난 2009년 3월12일(1496.5원)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 한국거래소에서 코스피도 전 거래일보다 5.96% 하락한 5251.87에 장을 마치면서 5200선으로 후퇴했습니다. 코스피의 경우 이날 오전 전 거래일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되면서 시장의 모든 거래를 20분간 중단시키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기도 했습니다.
시장에서는 국제유가가 최대 150달러까지 치솟는 최악의 전망까지 나오면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2% 달성 실패는 물론,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마저 나옵니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만약 미국·이란 사태가 장기화하며 중동 내 여러 에너지 시설에 피해가 확산될 경우, 유가 상단은 150달러까지 열려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국제유가가 연평균 배럴당 80달러 내외 수준으로 유지돼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0.4%포인트 증가시킬 것"이라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가면 물가상승률이 1.1%포인트 올라가고, 150달러면 2.9%포인트 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어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선 만큼,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걸프 지역 원유 공급망이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국제유가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윤금주 수습기자 nodrink@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