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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파업 사태, 사장 선임제도 개선 ‘재부상’
KBS 50일, MBC 87일째 파업..여야 모두 제도개선 필요성 ‘공감’
2012-04-25 17:40:51 2012-04-25 23:08:46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공영방송사의 유례없는 연쇄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사태 해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MBC의 경우 25일 현재 파업 87일째를 맞으면서 이미 최장기 기록을 넘어선 상태고, 이날로 파업 50일을 맞은 KBS는 지난 주 첫 해직자가 나온 이래 팀장급 보직간부 22명이 실명으로 파업 동참 의사를 밝히는 등 갈등상이 악화되고 있다.
 
방송가는 당초 19대 총선을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기도 했지만, 선거결과 ‘여대야소’라는 기존 구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으면서 6월 19대 국회 개원과 8월 두 공영방송사의 이사진이 바뀌는 시점을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야 공히 공영방송 사장 선임 과정에 여권의 정치적 입김이 반영되는 한계를 인정하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보이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KBS 보직간부 22명도 파업 동참
 
KBS는 사측이 지난 20일 최경영 기자를 해고하면서 갈등상이 악화되고 있다.
 
최 기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노조)에서 공방위 간사를 맡고 있으며 김인규 사장에게 ‘비방성 문자’ 등을 보낸 점이 문제가 돼 '성실·품위유지 위반'으로 해고됐다.
 
이에 KBS 특파원ㆍ아나운서ㆍ고참기자(9~20기) 등 직능별 조직체가 잇달아 성명을 내 사측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팀장급 간부 22명은 24일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회사의 중간간부로서 참담함과 더불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히고,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전향적 조치 없이 눈치만 살피며 시간을 보내다가 선거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후배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 정상적 ‘경영행위’에 해당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사장과 경영진에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KBS 보직간부가 ‘이례적’으로 파업 동참 의사를 밝힌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MBC 최장기 파업 연일 갱신..경찰 고발까지
 
MBC의 갈등상도 날로 깊어가고 있다.
 
MBC는 지난 주 임원급 인사를 단행하고 조직을 재편했지만 사실상 ‘노조 죽이기’라는 반발을 사고 있다.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이 속한 본부를 통합ㆍ격하하고, 노조와 대립각을 세웠던 이들은 일제히 승진했다는 이유에서다.
 
MBC는 시사교양국을 보도제작국과 통합해 편성제작본부 아래 두는 개편안을 20일 확정했다.
 
시사교양국은 <PD수첩> 등 정권과 날을 세워온 보도로 명성을 얻었지만 이번 조직개편으로 보도제작국과 합쳐졌다.
 
파업 참여가 높은 ‘라디오본부’는 ‘라디오국’으로 격하 돼 역시 편성제작본부 아래 배치됐다.
 
MBC 사측은 노조의 반발을 뚫고 23일 주총을 열어 지역MBC와 MBC 계열사 사장 인사도 마무리 지었다.
 
노조는 이번 인사로 MBC C&I, 원주MBC, 대전MBC, 대구MBC, MBC경남 사장으로 임명된 이들에 대해 ‘MBC 보도를 망가뜨리고 노조 탄압에 앞장선 이들’이라고 비판했다.
 
노조 역시 강경한 대응을 잇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23일 김재철 사장의 7억대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업무상 배임'에 해당된다며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김 사장의 구속 수사와 압수수색을 촉구했다.
 
노조는 또 김 사장이 <뮤지컬 이육사>의 예술총감독이자 안무, 주연배우까지 1인 3역을 맡았던 정아무개 씨에게 10억 원이 넘는 각종 특혜를 줬다고 주장하며 24일 경찰에 고발했다.
 
◇방송가 정치권의 결단 촉구
 
두 공영방송사의 연쇄 파업이 좀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자 방송가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정치권이 나설 필요가 있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양대 노조가 모두 사장 퇴진을 내걸고 있어 김인규ㆍ김재철 사장이 제 발로 물러나거나, 이사진에 의해서 해임되지 않는 한 파업의 끝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두 사장 모두 사실상 현 정권이 임명한 낙하산 인사인 만큼 사태의 책임 역시 여권에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임기가 정해진 사장을 정치권이 나서서 ‘정리’하는 게 올바른가 하는 원칙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현 정부 초기 정치권력의 ‘개입’으로 이전 정부가 선임한 공영방송 사장을 내친 것과 다르지 않은 방식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실상 KBSㆍMBC 사장의 선임권을 쥐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도 공영방송과 정치권력 사이의 어정쩡한 관계 뒤에 숨어서 “방송사 내부 문제”라고 선을 긋고 있는 형편이다.
 
◇“김인규ㆍ김재철 ‘낙하산 사장’ 퇴진 없는 제도 개선은 의미 없어”
 
KBSㆍMBC가 이번 파업을 해결하기 위해 일정부분 정치권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은 한국 공영방송의 한계를 웅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물론 파업을 촉발한 공영방송 사장 선임 제도가 여권에 좌우되는 현실 역시 명백한 한계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여야 공히 공영방송 사장 선임과 관련해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새누리당에서는 남경필 의원이 지난 2월 ‘낙하산 방지법’을 제안한 바 있다.
 
정부기관과 공기업에서 퇴임한지 3년이 안 된 인사나, 정당 또는 선거대책기구에서 활동한지 3년이 안 된 사람은 공영방송과 보도채널 임원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민주통합당 정장선 의원이 발의한 방송법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KBS 이사 정원을 기존 11명에서 12명으로 늘리고 방통위와 여야에서 각각 4명씩 추천하는 안이다.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야당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각기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한 공영방송사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제는 실천 의지와 남은 시간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은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이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이행은 늘 미뤄져왔다.
 
당장 오는 8월 KBS 이사진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진이 바뀌지만 법 개정이 유예되면 정부입김에 좌우되는 인사가 또다시 이사진 다수를 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제도 개선 문제에 집중하는 사이 현 낙하산 인사의 폐해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지난 20일 해직된 최경영 KBS 기자는 언론 기고를 통해 “KBS 개혁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사람, 문화, 제도 순”이라고 순서를 잡으면서 “지난 4년 동안 숨죽이고 살면서 권력의 향배만 주시하던 사람들이 오로지 ‘지배구조 개선’을 주창하는 것은 뜬금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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