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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건 사장 "'KBS교향악단이 달라졌다는 얘기 듣고싶다"
2013-01-17 09:27:37 2013-01-17 15:53:13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재단법인 KBS교향악단이 다음달 초 정기연주회를 연다.
 
연주회 회차는 667회로 정했다. 666회는 비워두기로 했다. 지난해 3월 함신익 전 상임지휘자와 단원들 사이 극심한 내홍으로 취소된 666회 정기연주회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다.
 
지난해 9월 우여곡절 끝에 재단법인으로 새 출발한 KBS교향악단은 그동안 이미 총 세번의 연주회를 열었다. 그러나 정기연주회의 의미는 남다르다. 갈등의 정점을 찍은 이후 약 1년만에 다시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기연주회 재개로 KBS교향악단 정상화 움직임에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그 중심에는 재단 측과 단원들 사이를 오가며 소방수 역할을 하는 박인건 사장(56)이 있다.
 
KBS교향악단 초대 사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은 이후 4개월 남짓의 기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지난 16일 KBS교향악단 사무실에서 박 사장을 만나 물었다.
 
 
 
 
 
 
 
 
 
 
 
 
 
 
 
 
 
 
 
 
 
-취임한 지 어느덧 4개월 남짓 흘렀다. 그간의 경과에 대해 말해달라.
 
▲알다시피 지난해 교향악단 단원들이 아픔을 겪었다. 단원들이 지휘자,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단원들끼리도 소송을 하는 등 상처도 있어 3월부터 8월까지 공연을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재단법인으로 출범했다. 재단법인에 반대했던 단원들은 2년간 파견이라는 형식으로 근무하기로 타협을 했고, 나머지 단원들은 재단법인으로 전적하는 데 동의한 이들이거나 새로 뽑힌 단원들이다. 한 집안에 두 식구라고 볼 수 있다.
 
그래도 파견 단원들의 생각이 전적에 동의한 단원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재단법인 출범이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이들도 안다. 단지 본인 신변에 대한 불안, 예산 확보에 대한 확실성과 같은 미심쩍은 문제가 있었다.
 
일단은 안정되는 것이 첫번째 미션이다. 단원들과 여러가지 소통을 통해 교향악단이 정상화되어야 한다. 정상화라 함은, KBS교향악단이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교향악단으로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올해 6월 안에 상임지휘자를 모시는 문제가 있다. 이달 말부터 상임지휘자 추천위원회를 가동할 계획이다. 또 좋은 연주자들을 데려다 놓고 연주의 질과 양을 모두 높일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혁신을 꾀할 생각인가?
 
▲일단 단원들과 분기별로 만나 간담회를 하고 있다. 1월 간담회에서 사무실 직원들과 교향악단 단원들 간 상견례도 했다. 구체적인 숫자도 목표로 제시했다. 올해 여러가지 연주회를 85회 열 생각이고, 예산은 현재 우여곡절 끝에 115억원이 됐는데 차츰 수입을 더 만들어낼 예정이다. 
 
연주회의 패턴도 바뀔 예정이다. 과거에는 정기연주회를 예술의전당에서 한 번, 그리고 KBS홀에서 한 번 했다. 그런데 이 두 공연장은 같은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데다, 보통의 경우 관객들은 KBS홀보다는 예술의전당 공연을 선호해 공연의 무게가 한쪽에 쏠리게 된다. 그래서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는 KBS홀에서 공연을 하더라도 정기연주회는 용인, 안양, 강동, 인천, 고양, 성남 등 경기수도권으로 확장해보려 한다. 예술의전당에서 정기연주회 한 번 하면 수도권의 공연장에서 초청을 받아 한 번 공연하는 식으로 시스템에 새로운 변화를 주려고 한다. 아마 단원들은 왔다갔다 하느라 힘들어 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감당하리라고 생각한다.
 
시스템도 많이 바꿨다. 단원 중에서 총무 역할을 없애고 우리 직원이 직접 들어가서 매니저 역할을 한다. 단원 매니저, 단원 부매니저가 있어 의사결정이 빠르다. 예전에는 총무가 직원한테 직접 와서 이야기해야 하다보니 결재 하나 받으려면 9개 절차 거쳤는데, 지금은 3단계면 끝난다. 또 그 자리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실무자들이 바로 처리해주기도 한다. 아마 단원들이 달라진 점을 많이 느낄 것이다.
 
또 하나, 모든 예술기관이 마찬가지겠지만 예산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신규단원 14명을 오디션을 거쳐 새로 모았다. 우수한 단원들 모으려고 애를 썼다. 새 진영을 짜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려 한다. 단원들도 심기일전하고 있다.
 
-100여 명의 단원 중 전적 단원과 파견 단원의 비율은?
 
▲전적이랑 파견 근무 비율은 현재 3대 7 정도다. 파견 단원의 경우도 결국은 과도기적 문제, 연착륙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파견 근무 기간은 2년이다. 재단법인 설립이 이해가 안된 경우에 파견을 선택한 것인데 당시 그들이 조건을 내걸었다. 2년 후 재단법인의 운영이 생각보다 크게 하자가 없다면 그때 전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2년 후에는 서로의 입장에 대해 다시 한번 논의를 해야할 것이다.
 
-숫자적인 경영 목표 외에 내홍을 추스리는 역할도 해야 하는 자리다. 신년 초에 단원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
 
▲덕담을 했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서 자식 셋에게 17마리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큰 아들은 2분의1, 둘째는 3분의1, 막내는 9분의1을 가지되 피를 보지는 말라는 유언과 함께. 근데 17마리를 어떻게 2분의1, 3분의1, 9분의1씩 나눌 수 있나. 그래서 고민하는데 말을 타고 지나가던 나그네가 얘기를 듣더니 '그럼 내 말을 한 마리 가져가라'고 했단다. 그래서 형제들은 18마리의 말을 서로 나눠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비율대로 각각 9마리, 6마리, 2마리를 가지고 나니 1마리가 다시 남더라. 그래서 나그네가 다시 남은 한 마리를 타고 떠났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협상에서 지렛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듯 여러분들이 나그네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얘기했다. 각자 몫에만 집착하지 말고 설사 손해보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좀 더 거룩하고 고독한 자가 되자고 얘기했다. 
 
누군가는 손을 들고 '그럼 나그네가 지휘자입니까'라고 묻기도 했는데(웃음). 아무튼 그게 지휘자가 됐든, 자기가 됐든 간에 지금 현재 이 상태에서는 서로 양보하는 수 밖에 없다. 더 싸우면 이제 스스로 손해보게 된다. 음악적 문제가 아니라 신변 문제 가지고 계속 싸우게 되면 국민이나 회사 모두 잘했다고 박수치기 힘들어진다. 사실 우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KBS교향악단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안티하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다. 다른 곳과 비교해 가며 더욱 열심히 음악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위기의식도 한번 느꼈고 해서 다들 열심히 하려고 한다.
 
사실 모든 예술단체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재단법인이 된 거다. 재단법인화를 돈 벌어 오라는 얘기로 자칫 오해를 할 수가 있다. 근데 사실 돈 버는 목적으로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100원 쓰고 5원 정도 벌던 단체에게 이제 20원, 30원도 벌어봐라 하는 얘기인 거다. 100원 쓰고 110원 벌어오라는 곳은 없다. 그 차이에 대한 인식 필요하다. 스스로 자구노력 하면서 후원과 투자를 받는 등 문화예술계에서도 여러가지 룰이 바뀌어 가고 있다. 클래식한다고 해서 무조건 예외가 되기는 힘들다.
 
-상임지휘자 선임 절차가 궁금하다. 단원들의 의견은 어떤 식으로 반영되나?
 
▲외국의 경우 상임지휘자 선임할 때 여러가지 방법을 쓴다. 단원들이 직접 투표하는 곳도 있고... 우리는 이번에 수석회의를 만들었다. 악기 파트를 대표하는 수석들이 있는데 이들과 회의를 한다. 결정권이 있는 것은 아니나 그 쪽 이야기를 많이 참작해서 내가 이사회에 전달한다. 바꿔 얘기하면 단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추천위원회가 총 7명으로 구성되는데 최근에 단원 대표 1명, 악장단 1명, 단원들이 추천한 사람 1명, 사장, 이사회 1명, 외부 심사위원 2명 해서 명단을 확정했다. 지금 현재로는 단원들의 의견과 외부 의견을 받아 좋은 분을 선택해 이사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늦어도 올해 하반기 중에는 상임지휘자를 발표할 수 있을 거다.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지금 마음 속에 약간 부담스러운 문제가 있다. 이제까지 교향악단 단원들을 대상으로 형식적인 평가 외에 제대로 된 평가가 없었다. 그래서 올해 어떤 형태가 되든 단원들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려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단원들과 나 사이의 의견이 대립 중이다. 단원들은 절대평가를 원하고 나는 상대평가를 원한다.
 
사실 나는 평가자가 아니라 평가를 관리하는 입장이다. 평가가 제대로 됐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래도 2년마다 평가를 해서 전체의 3%, 100명에 3명 정도는 재오디션을 통해 최소한 상임지휘자에게 재계약 여부의 권한을 줘야 단원들이 열심히 하지 않을까. 가장 양보할 수 없는 선이다. 단원들의 경우, 큰 원칙에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저런 제도를 정비하면서 올해는 그렇게 갈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KBS교향악단 사장으로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KBS교향악단 단원 혹은 직원 스스로 '우리가 좋아졌다'고 얘기하는 건 우습다는 생각이다. 제3자로부터 'KBS교향악단의 태도가 달라졌다, 소리가 달라졌다, 직원들도 열심히 하더라' 하는 얘기를 듣도록 하는 게 우리나 교향악단이 해야 할 역할이다.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KBS교향악단하면 대한민국 최고의 교향악단으로 생각했었는데 그걸 회복해야 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상화되면서 서울시향과 선의의 경쟁도 할 수 있게 됐다.
 
소위 '우리 공연에 자주 찾아와달라'고 하는 게 내가 할 얘기인 것 같다. 인생에서 쉼표를 찍는 방법으로 KBS교향악단 공연을 선택하셨으면 한다. 노래에는 쉼표가 있고, 그림에도 여백이 있지 않나. 봄이나 가을, 일년에 한 두번 쯤은 장롱 안에서 가장 멋진 옷을 꺼내 입고 공연장에 오셔서 소리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셨으면 한다. 많은 성원을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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