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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블로그)미래부와 해수부 이전 논란?..논란 키운 임자는 따로 있다
2013-09-18 12:29:13 2013-09-18 12:32:53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습니다. 공자는 "양식과 군비를 풍족히 하며 백성이 정부에 대해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공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중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 먼저냐고 말입니다.
 
공자는 군비를 먼저 버리고 또 버려야 한다면 양식을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에 대해 믿음을 갖게 하는 일'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만약 백성이 정부에 믿음을 잃게 되면 나라는 지탱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며칠 전 과천 시내에 한 무리 군중이 모였습니다. 손에는 피켓을 들었고 현수막도 걸었습니다. 피켓과 현수막에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이전하지 마라'는 말이 적혔습니다. 이들은 미래부의 세종시 이전에 반대하는 과천 시민들입니다.
 
비슷한 시위는 세종시에서도 열리지만 구호는 다릅니다. '미래부와 해양수산부의 세종시 이전을 환영한다'는 내용입니다. 시위는 최근 정부와 여당이 미래부와 해수부를 세종시로 이전하기로 했다는 발표 후 과천과 세종에서 심심치 않게 보는 광경이 됐습니다.
 
도대체 미래부가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기에 시민들이 서로 자기 지역으로 오라고 난리일까요. 올해 9월 기준 미래부 공무원 정원은 약 790명. 정부 부처 중에서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이들이 과천에서 차지하는 경제 비중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세종시 이전에 반대하는 과천시 성명(자료제공=과천시)
 
지난 5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올해 1월1일 기준 전국 261개 시·군·구별 공시지가에 따르면 세종시 땅값은 전년보다 47.59%나 올랐습니다. 정부부처 이전으로 공무원과 그 가족, 기자들이 함께 옮기면서 주택 수요가 늘고 주변 개발압력도 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과천시 지가는 전년 대비 0.16% 내렸고,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무려 13.1% 하락해 전국 최대 낙폭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과천시 원문동 아파트는 몇 해 전에는 6억원대였지만 지금은 5억원도 안 됩니다. 땅값이 이러니 다른 경제적 효과는 안 봐도 뻔합니다.
 
해수부 유치를 놓고 신경전 중인 세종시와 부산시 상황도 미래부 이전 논란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민뿐 아니라 시장, 국회의원까지 나서 미래부와 해수부를 자기네 지역에 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한 마디라도 거들고 다니기 바쁩니다.
 
이쯤이면 과천 등에서 일어나는 시위는 수익성 있는 사업을 자기 지역으로 유치하려는 핌피(PIMFY) 현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부 부처 이전이 갖는 사회경제적 효과까지 고려하면 미래부 등의 이전은 지역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논란거리로 비칠 정도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게 논란거리일까요. 논란이라면 정말 지역 이기주의가 원인일까요. 행정수도 이전은 참여정부 때부터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명분으로 내세워 10년 넘게 추진된 정책입니다. 예고도 없이 뭘 옮기거나 어디에 특혜를 주려는 게 아닙니다.
 
또 정부가 행정수도 건설을 위해 마련한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ㆍ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에 따르면 지방 이전 대상에서 제외된 부처는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안전행정부 ▲여성가족부 등 6개 부처뿐입니다.
 
따라서 세종시 이전에 대해 정부가 10년 전부터 정책을 추진하며 관련법을 만들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옮기고 말고를 규정해 놨기 때문에 이전하느냐 마냐는 이미 예전에 결정됐던 셈입니다. 다만 세종시 입주여건 조성에 따라 시기만 확정 안 됐을 뿐입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의 세종시 이전을 환영하는 세종특별자치시(사진제공=세종시)
 
미래부 등의 이전 논란을 만든 진짜 주범은 바로 정부의 오락가락 태도입니다. 행정수도를 만드느냐 마느냐부터 언제 옮기느냐, 옮기기는 옮기냐, 어디를 옮기냐까지 수많은 오락 가락과 무원칙을 펼치며 정책적 혼선을 빚은 곳이 정부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라의 수도를 이전하는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고 때에 따라서는 세부 대책이 아예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칙과 흐름은 일관되게 유지돼야 합니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원칙과 흐름을 지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번 정부도 행정수도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공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종시 입주 환경이 아직 조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래부를 과천에 뒀습니다. 미래부와 해수부를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발표도 두 시간 만에 여당에서 미확정이라고 뒤집었습니다.
 
정부부터 원칙 없이 헤매니 어느 누가 정부를 믿을까요. 법이 엄정하지 않을수록 목소리만 큰 사람이 이긴다고 합니다. 지금 과천과 세종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시위는 정부의 무원칙이 빚은 사태입니다. 과천과 세종, 부산 어느 곳에도 믿음을 못 줬습니다.
 
공자의 이야기를 읽는데 미래부 이전 문제가 떠오른 것은 단지 우연일까요.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역대 정부의 행동과 이번 정부의 모습을 보면 공자가 왜 군비와 양식, 국가에 대한 믿음 중 '믿음'을 정치의 요체라고 가르쳤는지 이해가 갈 정도입니다.
 
공자와 자공의 2000년 전 대화는 아직도 정치학에서 회자됩니다. 행정수도 이전을 놓고 정부가 국민에 믿음을 주지 못해 지역마다 시위가 일어났으며 결국 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정책을 뒤집었다는 일이 우리 후손들에게 반면교사로 회자될까 우려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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