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투명 산소’를 세는 사람들
2026-06-12 06:00:00 2026-06-12 06:00:00
소가 숨을 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온실가스 배출량에 포함한다는 게 말이 될까? 트림과 방귀로 나오는 메탄이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호흡까지 따지는 건 너무하지 않는가? 우리 인간도 숨을 쉬며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데. 솔직히 나도 처음엔 너무하다 싶었다.
 
하지만 실제 벌어지는 논쟁이다. 더 생각해 보자. 소의 개체수는 공장식 축산이 본격화한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약 10억마리에 이를 만큼 폭발적으로 늘었다. 인간이 고기와 우유를 얻으려고 불려놓은 숫자다. 이 소들의 숨은 ‘자연’인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인가. 어디까지를 셀 것인가는 자연이 정해주지 않는다. 인간이 정한다.
 
우리는 흔히 숫자를 객관적인 지표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숫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정치적이고 복합적이며 때로 우연적이다. 한국은 한 해 약 7억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최근 정부와 과학계의 각고의 노력으로 갯벌이 새로운 탄소흡수원으로 국제 인증을 앞두게 됐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배출량은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줄어든 걸까? 아니다. 갯벌도 바다도 어제와 똑같다. 탄소 회계 장부상의 ‘숫자’가 감소할 뿐이다.
 
소도 마찬가지다. 소의 배출량을 줄여 잡으려는 축산업계, 배출계수(소 한 마리당 배출량을 정하는 계수)를 최대한 정밀하게(혹은 적게) 산정해 국가 배출량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정부 그리고 환경 훼손의 연쇄 효과까지 포함해 넉넉히 잡으려는 환경단체의 의도가 각각의 숫자 안에 들어있다. 2023년 나는 이런 이야기를 담아 ‘소는 억울하다’라는 기획 기사를 썼다.
 
그 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연구팀(전치형, 김성은, 이슬기)과 연이 닿았다. 이들은 같은 문제의식으로 현장을 누비며 연구한다고 했다. 그 결실인 다큐멘터리 영화 <탄소를 세는 사람들>이 지난 7일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관객심사단상을 받았다. 영화에는 도시의 대기와 갯벌, 그리고 소의 탄소를 세는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연구팀은 지난해 학술지 <ECO>에 실은 논문에서 “기후변화의 다양한 현장에서 상이한 목적으로 탄소의 개수를 헤아리는 지식 활동”을 ‘탄소를 세는 과학’이라 명명했다. 현장에서 과학자들은 나름대로 엄밀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더 큰 차원에서 탄소 세기는 상충하는 방법론과 엇갈린 이해관계, 서로 다른 가치가 경합하는 장이 된다. 갖가지 욕망이 투여된다. 탄소를 세는 순간 소 한 마리와 승용차 한 대가 같은 저울에 오르고, 숲과 갯벌은 승용차 수만 대어치 흡수원으로 환산된다. 그렇게 매겨진 숫자로 누구는 배출권을 팔고, 누구는 책임을 덜고, 누구는 면죄부를 얻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탄소를 세는 사람들>은 탄소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과학자들의 치열한 노력을 담았다. (사진=서울국제환경영화제 제공)
 
실제 배출량과 탄소 회계는 다를 수 있다. 탄소 측정은 불확실성을 품고 있지만, 배출량으로 확정되어 회계에 편입되는 순간 ‘사실’이 된다. 반대로 회계 밖에 있으면 없는 것이 된다. 군사 부문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그렇다. 분명 배출되지만 국제 기준의 회계에는 잡히지 않는, 이른바 ‘투명 탄소’다. 교토의정서 협상 당시 미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군사 부문을 배출량 산정에서 제외해 달라는 로비를 벌였다. 결국 2015년 파리협정에서도 군사 부문 배출량 보고는 각국의 자발적 선택에 맡겨졌다. 실제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데도 세계적 기준의 탄소 회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연구팀은 우리의 탄소 세기에 관한 지식이 ‘이중의 분절’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대기과학과 해양생태학과 정책학 등 각 분과가 저마다 탄소를 세지만 서로 비교하고 토론할 자리가 없다. 또한, 탄소를 세는 과정과 숫자를 활용하는 과정이 분절되어 종합적인 분석을 방해한다.
 
그러니 탄소 숫자를 맹신해선 안 된다. 우리가 할 일은 숫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즉, 탄소를 세는 행위 자체를 기후위기의 핵심 문제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탄소 세기의 불확실성과 근본적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상충하는 숫자 너머의 현실을 이해하고 다투고 합의에 이를 수 있다. 
 
과학자들은 그 불확실함을 알면서도 오늘도 센서를 들고 갯벌로, 숲으로, 외양간으로 간다. 완벽한 숫자가 아니라 정직한 숫자를 향해서다. 탄소를 세는 사람들은 불확실함을 끌어안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들이다.
 
남종영 KAIST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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