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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군기의 달콤함
오늘 부는 바람은
2015-03-31 16:22:00 2015-03-31 16:26:10
“군기가 빡세지 않으면 사람이 죽는다.” 처음 자대에 도착했을 때 선임이 한 말이다. 나는 운전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보직 특성상 사소한 실수 하나가 생명을 위협한다. 후진 유도를 하다가 기둥에 깔리거나, 급커브를 틀다 차량 전복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례는 잊을 만하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 군기가 엄격해야 할 명분은 넘치고 흘렀다.
  
군기 확립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많았다. 먼저 인사법이 그러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큰 목소리로 외칠 것. 내가 속해있던 부대는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수고하십시오.”처럼 다나까 외의 어미를 활용했는데 적절한 상황에 따라 영혼 한 줌 담기지 않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이병 시절, 화장실을 한번 다녀오면서 중대의 모든 선임에게 “편안한 밤 되십시오.”를 말하느라 입에서는 단내가 풍기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렇다고 어느 선임 하나 인사를 빼먹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하면, 군기가 빠졌다는 명목하에 집합이 걸려, 구타 및 가혹 행위가 빠진 군기를 다잡았으니까.
 
◇KBS뉴스 화면(캡쳐=바람아시아)
 
인사법을 통한 군기 확립은 약과였다. 군기 확립 정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시간은 ‘청소’와 ‘점호’를 할 때였다. 매일 9시, 주어진 15분 안에 생활관에 있는 모든 먼지를 제거해야 했다. 간혹 텔레비전 뒤 혹은 관물대 위도 손바닥을 쓸며 점검했기에, 걸레가 닿지 않아도 되는 그린벨트란 존재하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15분 동안 생활관을 새것으로 만들고 나면,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범벅되곤 했다. 간혹 날씨가 서늘하여 땀으로 속옷이 젖지 않는 날이면 되려 의심받을 정도였다. 또 다른 군기 확립의 시간인 아침 점호는, 생활관별 군기를 뽐내는 군기 경연의 장이기도 했다. 분대장이 맨 앞에 서고 낮은 계급부터 줄줄이 섰던 까닭에, 이병의 작은 실수는 언제나 타 생활관의 좋은 안줏거리였다. 그리고 실수한 이병은 안주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질겅질겅 씹혔다.
  
전역한 지 1년, 아직 그때의 기억이 생생해서일까? 대학가 ‘행동 규정’ 강제 이행 사건, ‘얼차려식’ 체력 훈련 사건을 접하고 기분이 묘했다. 선배에게 극존칭 사용은 물론, 압존법, 관등성명, 그리고 복장규제까지. 좋지 않게 헤어진 옛 여인과 우연히 마주친 것 같았다. 전역하는 날, 나이 스물을 기점으로 전역한 사람이 전역할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사회 속 군기 문화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전시를 대비하는 군대와 학문을 배우는 대학이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 뉴스를 접하는 내내 씁쓸했다.
 
◇KBS뉴스 화면(캡쳐=바람아시아)
 
지금까지 대학에 군기 문화를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군기 문화가 가진,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엄격한 규율, 때로는 과하다 평가받는 부조리한 관행은 위계질서를 확고히 하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한다. 같은 규율에 따라 동등한 과정을 겪은 학생들은, 다른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소속감을 공유할지도. 또 다른 이유로는 전통이 등장한다. 학부, 학과별로 이어온 관행이기 때문에 너도 똑같이 견뎌야 한다는 논리. 부당한 논리는 나도 똑같이 견뎌 냈다는 부당한 근거로 힘을 얻는다.
 
◇KBS뉴스 화면(캡쳐=바람아시아)
그러나 폭압적인 분위기에서 형성된 위계질서와 공동체 의식이 지속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강압적 규율과 부조리한 관행은 오히려 경직된 인간관계를 양산하며 단체에 애착을 두고 헌신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다. 군기 문화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소지가 많다는 이야기다. 반면, 대학의 군기 문화는 확실하게 수평적 소통문화를 파괴한다.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평등한 인간관계를 맺을 가능성은 적다. 혹여 맺더라도 선배와 후배, 앞 기수와 뒤 기수의 관계로 한정된다. 검증되지 않은 효과의 대가로, 군기 문화가 학생에게 부과하는 육체적 고통과 감정적 소모는 너무 크다.
  
“예전에는 더 심했다. 선배들한테 맞는 것도 다반사였다.”
“단체 활동이 많은 과의 특성상 필요한 부분이다.”
“학생들이 운동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다.”
 
사건이 불거지고 난 후, 억울하다는 듯 선배, 해당 학생회, 학과장이 말했다. 어쩔 수 없다며 책임을 면피했다. 나도 억울했다. 긴 이병, 일병 생활을 마치고 상병을 갓 달았을 때 세상은 뒤바뀌었다. 계급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회가 아니라, 만‘병사’가 평등한 사회로. 갑작스러운 상부의 지침은 분대별 생활관을 계급별 생활관으로 재편했다.
 
이병 시절, 차가운 물에 걸레를 빨고, 탈탈 털리면서 청소를 하고, 칼 위에 선 듯 긴장하며 점호를 받던 시간이 떠올랐다. ‘왜 하필 지금!’ 지난날이 너무 억울했다. 안락한 일 년 동안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 구상해놓은 청사진을 전부 내다 버렸다. ‘수송부’ 종말론이 등장했다. 앞으로 수송부는 온갖 교통사고와 내부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이 모든 결과의 원인은 계급별 생활관 때문이다. 빠진 군기가 모든 이에게 온갖 해악을 끼치리라. 틈만 나면 군 상부를 욕했다.
 
뜻밖에 군대는 잘 굴러갔다. 위계질서가 무너지면 극심한 혼란이 찾아오리라는, 비아냥 담긴 예상이 빗나갔다. 각자 스스로, 고유의 방법으로 후임들은 군기의 빈자리를 채워 넣었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효과가 천천히 드러나기는 했지만, 몇몇 후임은 군기가 엄격한 시기보다 훨씬 더 나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당연시했던 군기 문화의 절대성은 상대적이었다.
 
군기는, 군기 문화가 만연한 조직에서 없어지면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핵심 요소다. 그러나 정교하게 뜯어보면 군기는 위계질서 강화, 공동체 의식 배양을 통해 조직을 지탱하는 양성 인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억압된 분위기 속 개인이 잠재력 배제하여, 조직의 발전 가능성을 짓누르는 악성 종양이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군기 문화에 몸담고 있는 이들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다. 그러나 군기 문화가 가져다주는 순간의 달콤함은 강렬하다. 1년만 죽어라고 고생하면, 나머지 시간 동안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애써 학생들의 상황을 일일이 고려하며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명료한지! 안락함에 힘입어, 군기 문화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다.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다.” 군기 문화의 달콤함이 또다시 움트는 새 학기, 아우슈비츠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은 빅터 프랭클의 말은 대학가에 경종을 울린다. “필요하다.”, “어쩔 수 없다.”,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핑계 가득한, 헛된 군기의 달콤함에서 어서 빨리 대학생들이 헤쳐나오길 희망한다.
 
 
허석영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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