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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불씨 ‘지뢰’ 문제를 대화·협력의 불씨로”
DMZ 주변 100만발 이상 묻혀…지뢰 제거, ‘평화지대화’ 첫걸음
남측 피해 민간인 462명 추산…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이슈
2015-08-30 11:07:44 2015-08-30 11:07:44
충돌 직전까지 갔던 남·북의 군사적 위기가 ‘8·25 고위당국자 합의’에 의해 봉합되어 대화 국면으로 넘어간 가운데,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지뢰 문제를 남·북 협력과 대화의 소재로 삼는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그간 남·북이 크게 다뤄오지 않은 지뢰 문제 해결에 머리를 맞댐으로써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고 있고 과거 정부도 구상한 바 있는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라는 목표를 이루는 길이기도 하다.
 
사고가 터질 때에만 잠시 회자되고 마는 지뢰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한국전쟁 이후 62년 동안 남·북의 대치가 이어지면서 비무장지대(DMZ)에만 100만여 발 이상의 지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뢰는 값이 싸면서도 적의 진격을 오랜 시간 지연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특히 DMZ 일대에 집중적으로 묻혔다.
 
남측이 매설한 지뢰로는 M-14와 M-16 대인지뢰, M-15 대전차 지뢰가 있다. 북한의 대인지뢰는 목함(PMD-57), 수지재(PMN), 강구(BBM-82)지뢰와 ATM-72, ALM-82 대전차 지뢰 등이 있다. 북한의 지뢰는 목재와 플라스틱 등 비금속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 우리 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휴대용 탐지 장비로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남측이 묻은 지뢰가 터져 남측 군인이나 민간인이 다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지뢰 폭발로 군이 2명이 크게 다친 사고가 일어난 지 19일 만인 지난 23일 경기도 연천군 DMZ에서 부사관 1명을 공격한 것은 우리 군이 매설한 M-14 지뢰로 밝혀졌다. M-14 역시 플라스틱 재질로 가벼워 여름철 폭우가 내리면 떠내려가 군인이나 민간인들의 발목을 공격한다. 군은 남측 DMZ에서 지뢰 탐지·제거 작업을 하고 미확인 지뢰 지대는 따로 구별해두고 있지만 이같은 사고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지뢰는 DMZ 외에 후방 지역의 군사시설 주변에도 많이 매설되어 있다. 서울 우면산과 인천 문학산을 비록한 전국 방공포기지 근처에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지뢰가 매설된 적이 있다. 올림픽 이후 제거작업이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지뢰가 묻혀 있다. 지뢰금지국제운동(ICBL)의 한국지부인 '평화나눔회'는 후방 지역에 현재 약 7만5000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평화나눔회는 한국전쟁 이후 지뢰 피해를 입은 남측 민간인을 총 462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 가운데 158명은 사망했고, 304명은 부상을 당했다. 역시 M-14 대인지뢰 피해자가 137명으로 가장 많다. 2010년 7월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사미천에서는 주민 2명이 북한의 목함지뢰를 거둬가는 과정에서 지뢰가 터져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사미천과 강화도 일대에서 목함지뢰가 집중 발견돼 북한이 의도적으로 유실시킨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또 남한에 매설된 지뢰의 80%는 현재 군사적인 필요가 없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서둘러 제거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국방부가 제거하는 지뢰는 연간 500개 수준으로, 이런 추세라면 모든 지뢰를 없애는 데 489년이 걸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또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M-14 대인지뢰는 금속탐지기로 탐지가 어려워 제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사회는 비인간적 무기인 지뢰를 없애기 위한 공동 노력을 기울여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지뢰 제거와 매설 금지를 목표로 하는 대인지뢰금지협약(오타와협약)이 1999년 발효되어 현재 160여개국이 가입한 상태다. 그러나 남·북한과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은 이 협약에 동참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작년 6월 더 이상 대인지뢰를 생산하거나 구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한반도는 예외로 뒀다.
 
남·북은 과거에 공개적인 방식으로 지뢰를 제거한 경험이 있다. 2000년 남·북한이 경의선 철도 연결에 합의한 이후 남쪽 지역 공사 과정에 3만6000여발의 지뢰를 걷어냈다. 해당 구간을 폭파 방식으로 1차 제거한 후 장비를 동원해 정밀 제거 작업을 했다.
 
당시 확인된 특이한 사실은 군사분계선 남측에 지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북측에서는 제거 작업에 의한 폭발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회고록 <피스메이커>에서 “방어태세의 남측이 많은 지뢰를 매설하고, 공격태세의 북측에는 지뢰가 적다는 것이 군사적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이 ‘지뢰 제거 협력’을 본격화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미 의회 연설에서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강조하고 있는 DMZ 세계생태평화공원도 앞당길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대통령) 취임 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에 생명과 평화의 공원을 만들자고 여러 차례 제안하고 그 구상을 가다듬어 왔다”고 강조했다. 지뢰 제거는 생태평화공원 조성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고위급접촉 공동보도문 1항에는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나가기로 했다"는 합의가 담겨 있다. 이를 근거로 남측이 지뢰 문제를 회담의 의제로 적극 제기한다면 남북 협력의 새 분야를 개척할 수 있게 된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접경지역의 명소를 따라가며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된 ‘평화누리길’ 주변에도 지뢰 지대가 있다. 지난해 8월 강원도 양구군 두타연 계곡에서 열린 '2014 평화누리길 걷기' 행사 중 지뢰 지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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