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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그가 꿈꿨던 세상, 이제 모두 함께 꿈꾸자"
고 이한열 열사 30주기 기념식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려
2017-06-10 03:00:00 2017-06-10 03:43:21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억압의 사슬을 두손으로 뿌리치고 짐승의 철퇴는 두발로 차버리자. 그대 끌려간 그자리 위에 민중의 웃음을 드리우자."(고 이한열 열사의 시 중에서)
 
정태원(Tony Chung) 씨가 1987년 고 이한열 열사의 피격 당시 모습을 기록한 사진. 사진/뉴시스
 
촛불집회 이전 최대 민주화운동으로 번졌던 ‘6.10 민주화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이한열 열사의 30주기 추모제가 9일 오후 연세대 신촌캠퍼스 '한열동산'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한열동산에서 열린 행사에는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와 더불어민주당 우상호·표창원·송영길·원혜영·문희상 의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우 의원은 이 열사가 숨진 1987년 이 열사의 모교인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동우회 회장이었다.
 
우 의원은 추모사에서 “지난 30년은 어머니와 저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떨쳐버리고 싶어도 떨쳐지지 않는 6월9일의 기억때문에 힘들었다”며 “그날 제가 도서관 앞 민주광장에서 오늘은 결코 물러서지 말자는 얘기를 안 했더라면, 생명이 다하도록 전두환과 맞서 싸우자고 선동하지 않았더라면 혹시 한열이가 물러서지 않았을까하는 그런 생각들, 총학생회장이 쓰러졌어야 할 자리에 왜 스물두살의 아무 죄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 쓰러져 숨져갔어야 했는가 하는 자책감. 이런 것들이 저를 계속 괴롭혀 왔던 30년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왜 최루탄이 난무하는 그 자리에서 동료들, 심지어 학생회장인 저까지도 교문 안쪽 수십미터까지 후퇴했는데 왜 한열이는 혼자 남아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이루고 싶은 소중한 꿈 때문에, 민주화에 대한 열망 때문에 여기서 물러서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그 절박감 때문에 저는 한열이가 거기 서 있는 것이 설사 자기를 다치게 하는 일이고, 1월에 목숨을 잃었던 박종철처럼 또 본인의 생명을 잃을 수 있지만 물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그래서 그때 평소 집회처럼 물러섰던 저같은 수없이 많은 학생들이 한열이가 쓰러지고 나서야 울면서 반성했다. 내일은 물러서지 말자. 시청 앞에 가면 경찰이 다가와도 그냥 그자리에 앉자. 그렇게 했던 것이 6월 항쟁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제30주기 이한열 열사 추도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이한열동산에서 인천고교 학생들이 이한열 열사의 사진 앞에서 묵념 및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는 또 “지난 30년간 6월9일이면 어김 없이 이 자리에서 추모식을 했다. 한때는 40명이 모여 조촐하게 한 적도 있다. 수십만명이 모여 장례식을 치렀는데 불과 십몇년만에 40명밖에 안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저는 외로웠다. 후배학생들이 이한열이라는 이름을 모른다며 웃을 때 같이 웃었지만 속으로는 찢어지는 마음이었다. 십몇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잊을 수밖에 없는 이름이라면 그의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우 의원은 “그러나 작년 광화문 광장에 80만명이 모였을 때 저는 소리 없이 울었다. 국민들이 이한열을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구나. 민주주의를 잊고 살았던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국민들을 못 믿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017년이 1987년에게 대답해 줬다. 많은 국민들이 새로운 정권교체로 이한열을 잊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이어 “지난 10년간 추모식에서 저는 이한열의 어두운 얼굴을 상기하며 돌아보곤 했다. 30주년이 된 오늘 여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열이의 얼굴은 밝게 웃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꿈이 다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수십만명이 모여 추모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꿈의 일부가 이뤄졌고, 진전될 수 있다는 희망이 하늘나라에 있는 한열이에게도 잔잔하게 전달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족 대표로 나선 배 여사가 우 의원의 추모사에 화답했다. 배 여사는 먼저 “저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우리 이한열이를 부축했던 종창이가 30년동안 상당히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말은 안 했지만 그사람의 아픔을 많이 느꼈다. 오늘부로 우리 종창이도 마음을 탁 털어버리고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우상호 (당시)총학생회장도 30년 그것 좀 벗어버리고 편히 좀 살았으면 좋겠다. 우상호 하면 이한열이다. 많은 언론에서 우상호 하면 이한열이다. 저는 그게 몹시 괴롭고 힘들었다. 정말 이 나라가 민주주의가 되는 이것들이 우리들의 일이고 우리가 바라는 것이지 여기서 이렇게 추모제 하고 이런 것은 부속에 불과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30주기 이한열 열사 추도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이한열동산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참석해 우상호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날 오후 6시15분부터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는 ‘2017이 1987에게 30주기 기념 이한열 문화제’가 열렸다. 6·10민주항쟁 30주년 전야제이기도 했다.
 
전야제 모두에 무대에 오른 우영옥 연세민주동문회장과 '이한열 추모기획단' 김현수 단장은 선언문 낭독에서 “앞으로 우리는 1987년 투쟁의 이한열을 추모하는 것에 머물 것이 아니라 2017년 희망의 이한열을 꿈꾸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혼자 꿈꾸면 영원히 꿈일 수밖에 없지만,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고 했다. 이제 과거 1987년 이한열이 꿈꿨던 세상이 펼쳐질 수 있도록 2017년 이한열과 함께 모두가 꿈꾸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이어진 순서에서는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가 ‘진혼의 춤’ 공연으로 이 열사의 넋을 위로했다. 이 교수는 공연이 절정에 이르자 이 열사의 혼을 담은 종이꽃 ‘한열의 꽃’을 들고 무대로 올라갔고,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연주되면서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과 공연단이 한 목소리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이날 문화제에는 가수 전인권, 안치환씨를 비롯해 세월호 유가족 합창단인 4·16 합창단, 연세대 동문이 모임인 '이한열 합창단' 등이 무대에 올라 이 열사를 추모했다. 이 열사의 중학교 동창인 배우 박철민씨와 촛불집회 도화선이 된 이화여대를 대표해 우지수 총학생회장이 함께 무대에 올라 일부 행사를 진행했다.
 
문화제에 앞서서는 30년 전 이날 이 열사의 장례행렬을 재연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태평로일대에서 시가행진을 벌인 장례행렬은 광화문 광장,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 문화제에 합류했다. 일부 시민들도 영정을 따르며 이 열사의 희생을 기렸다.
 
10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정부 공식기념식 행사가 진행된다. 기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다. 현직 대통령이 6월 민주항쟁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건 정확히 10년 만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날 오후 7시부터 '6월 민주항쟁 30년 기념 국민대회-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에 참석해 민주화 30년과 촛불승리를 아우르는 국민주권 대헌장 초안을 발표한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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