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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우리사회에 ‘손기정·남승룡 정신’ 전하고 싶었죠”
“1등만 외치는 세태 바꾸자면서 변화의 롤모델 방치되는 게 안타까워”
“돈만 좇는 디자인만 하면 스스로 영감을 소멸시켜”
2017-06-22 06:00:00 2017-06-22 06:38:56
[뉴스토마토 이우찬기자] 서울 중구 중림동 일대 50만㎡를 재생하는 사업인 ‘손기정&남승룡 프로젝트’로 손기정 체육공원은 마라톤 성지로 재탄생될 전망이다. 비운의 마라토너로 기억되고 있는 남승룡 선생도 진정한 민족 영웅으로 부활한다. 남승룡 선생은 손기정 선생과 함께 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복 이후 1947년 36세 나이로 출전한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는 서윤복 선생의 페이스메이커로 나서 금메달을 따는 데 헌신했다.
이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사람은 오준식 디자이너(VJO 대표)다. 오 대표는 손기정 체육공원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중구 주민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남승룡 선생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오 대표는 “손기정 곁에 있었던 남승룡은 비운의 마라토너가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딛고 자신의 인생과 꿈에 다가간 성공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서울로7017 브랜딩 작업에 이어 손기정&남승룡 프로젝트를 맡아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오 대표를 만났다.
 
서울로7017에 이어 손기정&남승룡 프로젝트를 맡았다. 공공디자인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 같다.
 
명함에 쓰여 있다. 소명이 ‘right design(옳은 디자인)’이다. 물론 돈 버는 프로젝트도 크게 하고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한 디자인도 한다. 이 부분만 몰입해서 잘 할 수도 있지만 평생 이윤을 위한 디자인에 몰입하는 게 꼭 원하는 모습은 아니다. 디자인 영역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한다. 예산이 너무 적어도 의미가 있는 공공프로젝트라면 참가한다. 의미가 큰 공공프로젝트라고 판단되면 재능기부로 하겠다는 의식도 있었다. 돈만 좇는 디자인만 하면 스스로 영감을 소멸시킬 수도 있다. 예술적 영감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고, 예술적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한 게 나쁠 거는 없다.
 
손기정(왼쪽)·남승룡 선생의 모습. 사진/양정고등학교 졸업앨범
 
손기정&남승룡 프로젝트와 함께하게 된 계기는 무언가.
 
길은 길 양쪽에 목적성이 있을 때 완성된다. 손기정 체육공원 쪽에는 엄밀히 말하면 아무것도 없다. (이곳은 서울로7017와 맞닿아 있는 첫 동네인 중림동 일대다.) 서울로7017과 연결돼 길로써 가치를 지니도록 많은 준비를 했다. 손기정 체육공원 쪽이 목적지로서 의미가 없으면 길로써 완성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손기정 체육공원이라는 훌륭한 콘텐츠를 발견했다. 다듬으면 도움이 될 거 같다고 판단했다.
 
손기정&남승룡 프로젝트로 시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프로젝트를 맡고 처음 한 일이 사람들한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지 정의 내리는 작업이었다. 우리가 왜 모였는지 생각하는 거다. 메시지는 성공이라는 새로운 정의다. 성공이 뭘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성공은 1등, 셀 수 없는 돈이다. 돈도 좋지만 ‘어떻게’가 빠진 돈만 이야기한다.
 
18세 남승룡은 주눅 들지 않았다. 달릴 때 눈빛을 보면 저항(정신)이 있다. 분명 역사적으로 험한 시기였는데도 주눅 들지 않는다. 청년 남승룡의 얼굴을 보시라. 어떻게 이 사람이 실패한 사람인가. 남승룡은 자기 인생과 꿈에 가깝게 다가간 사람이다. 맨날 1등 외치는 세태를 바꾸자고 하면서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조차도 방치하는 게 안타까웠다. 왜 지금은 다 주눅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왜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집단 비하의 시대가 됐을까.
 
손기정 체육공원 안에 먼지로 쌓여 있던 손기정의 이야기도 충분하지 못 하다. 게다가 잊혀 있었다. 손기정 선생을 도왔던 수많은 조력자도 있었다. 그런 걸 다 잊는다면 우리가 힘을 합쳐 하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 팀플레이 한 거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희생할까. (남승룡이) 페이스메이커로 뛴 거는 또 하나의 멋진 팀플레이다. 왜 그걸 실패한 인생이라고 감히 말하나.
 
손기정·남승룡 선생의 인생은 정말 가치가 많은데, 특히 이 시대 청소년들한테 줄 메시지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청년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경기가 좋지 않아 대부분 경력직만 뽑는다. 일자리도 부족하다. 손기정&남승룡 프로젝트는 컨셉트와 취지를 봤을 때 무조건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다. 경험이 부족해도 능력 있는 청년 아티스트와 함께 성공할 프로젝트를 작업한다면 이들은 경력을 바탕으로 또 다른 도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청년들과 함께 하는 작업은 남승룡 선생이 던지는 메시지와도 잘 어울린다. 청년 9명과 저까지 10명이다. 우리는 스스로 10분의 1로 표현한다.
 
손기정&남승룡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는 청년 크리에이터 9명이 손기정기념관 앞에 모였다. 위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지윤, 최영은, 김청조, 김미영, 선재은, 이세형, 김현식, 김지영, 이명지. 사진/VJO
 
서울로7017을 찾은 시민이 150만명을 넘었다. 소회가 어떤가.
 
사람들이 활발하게 이용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서울로7017이 성공할 거라고 오래 전부터 예상했다. 이 지역에 사는 주민으로서 실제 보면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길 자체로써 이용하는 걸 보게 된다. 서울로7017이 지닌 처음 목적이 살아나는 거 같아 반갑다. 좋은 일이다. 초기 한 달 동안 정착은 잘 된 거 같다. 지속적인 관리와 유지가 중요한 주제로 남았다. 최소 1년은 더 관심을 가지고 다뤄져야 한다.
 
서울로7017이 초기 그렸던 모습대로 구현됐나.
 
고가 가림막에 그렸던 게 구현하고자 한 모습이다. 가림막을 보시면 다양한 사람들, 관광객들,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장애인들 다 같이 있는데, 신기할 정도로 그 모습 그대로다. 늦은 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시민들이 정말 많다. 뿌듯하기보다는 (그런 모습이) 반갑다.
 
서울로7017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
 
하드웨어만큼 중요한 게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는 필요한 시간 안에 준비되는 게 중요하다. 소프트웨어는 그 자체가 돋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하드웨어가 어떻게 사용될지 이해나 정의를 곁들어주는 거다.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곳이 전국에 너무나 많다. 존재감을 못 갖거나 잘못 인식되는 하드웨어 프로젝트가 많다. 소프트웨어는 돈이 훨씬 덜 든다. 그런 프로세스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시에 같이 다뤄지는 사례가 공유되는 게 중요하다. 서울로7017이 그런 사례로 공유됐으면 한다. 서울로7017이 길 자체로써 하드웨어이면 소프트웨어는 이름·브랜드 디자인 등이다. 자원봉사자들 유니폼은 저비용 소프트웨어이지만 시민들과 함께 서울로7017의 완성을 만든다. 결국 마지막 완성은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업(業)의 정의를 내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 무엇을 만들 때 그 목적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곳을 공원으로 볼 것이냐 길로 볼 것이냐. 서울시와 처음 회의를 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 질문이 이거였다. 길로 보기 위해서 작업을 한다고 말씀드렸다. 당시 자료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다 공원이라고 표현했다. ‘서울역 고가 공원 프로젝트’, ‘하늘공원’, ‘고가공원’ 등등. 생각해보시라. 서울로7017이 공원으로 불렸으면 지금 비난의 폭격을 맞았을 거다. 이게 무슨 공원이냐고 그랬을 거다. 회의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공원으로 보면 돗자리, 휴식, 그늘이 연상된다. 길로 보면 떠오르는 게 다르다. 공원으로 보면 부족함뿐이다. 길로 보는 순간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길을 축으로 감싸고 있는 도시 전체가 보인다. 길로 볼 때 더 가치가 있다.
 
향후 손기정기념관에 설치될 손기정 선수 두상 전시 이미지 렌더링. 사진/VJO
 
재능기부 논란과 브랜드 네이밍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손혜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서울로7017을 브랜드를 지적했는데,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브랜드 디자이너 출신인 손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아무리 좋은 이름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이 잘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브랜드라고 할 수 없다”며 서울로 브랜드 가운데 since 7017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울로7017은 수많은 공청회를 거쳤다. 많은 의견을 듣고 녹여낸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 과정이 있었는데도 ‘내가 작업했다면’이라고 말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손 의원이 디자인계에 있는 원로 입장에서 비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손 의원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으로 얻은 주목도를 디자인 비평하는 데 쓰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한다. 나를 비난해서 안 좋은 게 아니라 앞으로 손 의원이 무서워서 누가 나서서 브랜딩 작업 같은 공공 디자인을 하겠나. 그런 우려 때문에 안 좋다는 거다.
 
재능기부는 처음 취지와 다르게 악용되는 문제가 있다. 사회에 진출한 젊은 아티스트에게 공공이 자꾸 재능기부를 요구하는 문제다. 사회적인 기반이 약한 친구들한테 재능기부를 요구하면 안 된다. 어느 정도 활동에 대한 기본을 갖춘 사람들이 재능기부를 하는 게 옳다. 젊은이들한테 던져서 맡겨놓을 게 아니라는 취지였다.
 
오준식 디자이너를 지난 16일 서울 중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사진/VJO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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