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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라영재 박사 “공공부문 정규직전환, 기존 정규직들 양보 필요”
"정원 통제되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쓸 수밖에…정규직 전환 과정서 임금체계 개편 필수"
"완전 직무급제는 불가, 역할 중요도 따라 차등 둬야"
2017-09-11 06:00:00 2017-09-11 06:00:00
[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라영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부문의 부패·혁신, 거버넌스(공공경영)를 주로 연구했던 관리행정 전문가였다. 국민권익위원회, 한국부패학회, 국가청렴위원회에 몸담았던 경력이 그의 이력을 말해준다. 지금은 공공기관의 조직·임금을 비롯한 평가 전반을 다루고 있다. 연구원 내 공공기관연구센터 부소장과 평가연구팀장을 겸하고 있다. 최근 현안은 문재인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다.
 
라 연구위원은 비정규직을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되, 그 과정에서 임금체계도 함께 개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정규직들의 이해와 양보도 필요하다. 특히 라 연구위원은 “차이를 두되, 그게 차별이 되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성과연봉제 도입처럼 정부가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보단, 노사가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자율적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하 일문일답.
 
라영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평가연구팀장. 사진/라영재 팀장 제공
-조직구조·임금체계 측면에서 민간기업과 구분되는 공공기관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지.
 
먼저 행정기관의 조직구조와 임금체계는 굉장히 경직적이다. 정부조직법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변하기 어렵다. 대신 정년이 보장돼 종사자들의 고용안전성이 굉장히 높다. 반대편 끝에 민간기업이 있는데, 상대적으로 고용안정성이 낮다. 기업이 도산할 수도 있고, 경영상 필요에 따른 구조조정도 상시로 이뤄진다. 행정기관과 민간기업 사이에 공공기관이 있다. 고용안정성은 민간기업보다 높고, 조직운영의 유연성은 행정기관보다 높다. 이 때문에 행정기관과 민간기업의 장·단점이 혼재돼 있다. 조직구조는 유연하지만 정원은 예산의 통제를 받고, 종사자들의 고용안정성과 임금수준은 높지만 비정규직 사용 및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조직구조 면에서만 보면 우리나라 공공기관은 관료제적 특성이 강하다.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일 텐데, 다른 나라들은 어떤지.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미국은 비영리단체(NPO)가 공적 영역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유럽에선 관료제가 발전하고 복지기능이 강화하면서 공공기관을 만들어 정부의 역할을 맡겨온 전통이 있다. 또 장학재단과 같은 비정부기구(NGO)의 역할이 크다. 1980년대 이후 영연방국가에서 공기업들을 민영화시키긴 했지만, 공통적으로 준정부기관의 비중이 크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은 유럽보다 관료제적 특성이 강하고, 보다 큰 공적 역할이 요구된다. 정부의 기능을 대신하는 데다 법인이나 협회 같은 NPO, NGO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합리성·효율성 측면에서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조직구조·임금체계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존속 가능성이 높다. 다수 국민이 제공받는 공적서비스를 갑자기 중단할 순 없다. 이는 조직도 유지됨을 유지한다. 당연히 관료제적 형태를 띨 수밖에 없고 계속 팽창하려 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X-비효율성이다. 기관은 비용을 줄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로 인한 가상의 적자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효율성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없을지.
 
극단적인 방식은 민영화다. 그게 아니라면 경쟁을 위해 평가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선 소유부처와 감독부처 이원화를 얘기한다. 공공기관과 해당 기관을 산하·소속기관으로 둔 부처는 기관과 이해관계를 같이하기 때문에, 감독권을 재무부처에 두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부터 기획재정부가 모든 공공기관의 예산을 통제하고 있다.
 
-한편으론 경영 효율화를 위한 재무부처의 통제가 강해지면서 기관이 자율성을 잃고, 이 때문에 정원 외 인력인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문제도 있다.
 
보다 구체적으론 정원의 문제다. 공공기관은 사업이 축소됐다고 인력을 줄이거나 구조조정을 실시하기 어렵다. 기관의 사업이 한계사업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언젠가는 기관 자체가 사라질 텐데 당장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해서 정원을 늘리기 어렵다. 그럼에도 기관은 더 많은 정원과 예산을 요구한다. 그런 상황에 각 기관에 자율성을 100% 보장해주긴 어렵다. 더욱이 국민의 세금이 쓰이는 문제인 만큼, 필연적으로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인지.
 
기본적으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비정규직 사용은 지양하는 게 옳다. 미국은 입·이직이 워낙 자유롭기 때문에 정규직·비정규직을 잘 구분하지 않고 유럽에선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직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비정규직을 줄여야 한다는 방향은 맞다. 다만 사업의 지속성 등 기관별 특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비정규직 자체를 못 쓰게 하는 것보단 원칙을 세워 되도록 덜 쓰도록 하는 게 부작용이 적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그들의 임금수준을 어디에 맞출지가 관건이 될 것 같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임금체계를 함께 개편할 필요가 있다. 연공성이 완화하는 추세긴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공공부문에선 호봉제를 기반으로 한 단일임금체계가 절대적이다. 비정규직들을 이 단일임금체계의 틀 안에 넣으려면 매년 각 기관에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 인건비를 적정 수준으로 통제할 수밖에 없다. 유럽만 돼도 직종·직무별로 임금 차등을 인정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철도공사를 예로 들면 기관사와 승무원 간 임금이 다르다. 임금체계에서 연공급 비중이 이렇게 큰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우리도 직종·직무에 따라 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인지.
 
그렇다. 다만 미국식 직무급제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노사 간 임금단체협상은 산업별, 직종별이 아닌 사업체별로 이뤄졌다. 그래서 직종·직무별 시장임금을 설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역할의 중요도에 따라 계단식으로 임금이 오르는 일본식 직무급제(역할급)를 활용할 수도 있고, 역할급제와 성과연봉제를 섞은 복수임금체계를 운영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사회적 합의다. 기존 임금체계를 바꾸려면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 또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기존 정규직의 양보도 일정 부분 필요하다.
 
-임금체계 개편 과정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차이를 두되, 그게 차별이 되게 해선 안 된다. 노동자들 스스로도 차이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이나 건강보험공단처럼 사무직과 연구직, 전문직(의료인 등)이 섞여 있는 일부 공공기관에선 이미 자격·기술에 따라 임금수준을 달리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가 간호조무사보다, 박사급 연구직이 대졸 사무직보다 월급이 많다고 이를 차별로 여기진 않는다. 지난해 성과연봉제 도입처럼 정부가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보단, 노사가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자율적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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