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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동행(同行)’을 생각하는 계절에
2017-12-11 06:00:00 2017-12-11 06:00:00
심한 부상을 당하고 제때 먹지도 못하여
무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새끼 사자가 절뚝거리고 있다.
이제 곧 그의 죽음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울 것이라는
예감으로 다가오고 있을 때,
형제인 듯한 또 다른 새끼 사자 한 마리가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동안
그를 기다려준다.
 
살아남을 자만 데리고 가겠다는
어미 사자의 판단력도 허물어졌는지
그의 가족과 더불어
그를 기다려주는 동안
죽음의 피를 보지 않았다는 안도감으로 물드는
아프리카의 노을,
대초원을 붉게 달구고 있다.
 
<시 ‘동행’ 전문>
 
필자의 졸시 ‘동행’ 전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KBS에서 방영되는 ‘동물의 왕국’에서 시의 소재를 얻었다. 나는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인 케이블 TV의 ‘야생의 왕국’ 등에도 시선을 빼앗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동물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현상들을 통해 나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장면이 연출되고는 하여 감동을 받거나 반성을 하거나 한다. 그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그날의 TV에서도 죽음을 맞이해야 할 새끼 사자의 운명이 ‘동행’으로 이어지는 가슴 뭉클한 반전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뇌에 강렬한 무늬 하나가 새겨지는 듯 했다. 이 졸작은 계간 ‘리토피아’ 2017년 겨울 호에 발표하였다.
 
동행. 동행. 동행. 이렇게 몇 번의 독백만으로도 따뜻해지지 않는가. 추운 계절을 실감케 하는 겨울바람 앞에서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온기가 우리들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지 않은가. 인류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단어 중에서 ‘동행’이 갖는 의미는 더불어 살아가라는 조물주의 명령이고 인류의 중요한 생존방식의 하나로 해석되기도 한다. ‘동행’이란 말 속에는, ‘같이 길을 걸어가는 것’ ‘같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 더 큰 메시지가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연말이 다가오기 때문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굳이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좋지 못한 일들이 ‘동행’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 2015년 보건복지부 요보호아동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가정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국가나 사회단체 등이 보호한 아이가 무려 4503명이나 된다고 한다. 하루에 12.3명꼴로 아이들이 버림받고 있는 셈이다. 아동양육시설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고아가 아닌 부모가 있는 상태에서 이혼 등의 이유로 버려진다고 하니, 가정의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이 현실에서 ‘동행’은 참 요원한 얘기처럼 들린다. 더하여, 한 해 버려지는 애완동물의 숫자도 10만 마리를 넘긴다는 통계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진지한 반성 없는 인간의 무책임함이 동장군보다 더 싸늘하다.
 
무엇보다 한 해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영아가 100여 명이나 된다는 우울한 수치는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에 육박하는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인구의 증가와 함께 맞물린 ‘노년의 삶의 질’도 우리가 살펴야 할 ‘동행’에서는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다. 또한 2017년 2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은 1.17명으로 세계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합계 출산율이라는 것은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를 지표로 나타낸 용어다. 이는 우리에게는 미래와의 ‘동행’을 어둡게 하는 어두운 그림자로 작용할 것이다.
 
요즘 내 친구가 밴드에 자주 올리는 단어의 하나도 ‘동행’이다. 그는 ‘동행’을 “우리는 같이 있어 가치 있다”고 표현한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가. 그렇게 새겨진 사진을 수시로 올린다. 다가오는 2018년 무술년에는 삶이 지향하는 가치에 온기를 불어넣는 ‘동행’의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곧 한 해의 마지막을 알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종소리가 세상 구석구석으로 스며들 것이다. 종소리는 다음 종소리가 이어질 때까지 절대로 자신의 호흡을 잃어버리지 않는 법이다. 종소리에도 ‘동행’의 기운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 종소리가 마치 우리 인간에게 ‘동행’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듯한 울림, 우리는 지금 그 울림이 깊어지는 계절을 지나가고 있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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