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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법원 스스로 파괴한 법관의 양심
2018-01-29 06:00:00 2018-01-29 06:00:00
양심 없는 법관 양성소가 된 법원행정처,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스스로 파괴하는 법원, 법관의 양심을 파괴하여 법관을 비참하게 만드는 법원.
 
과격한 표현이다. 그러나 틀림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판사 블랙리스트, 판사 사찰에 대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의 지난 1월 22일 조사보고서가 보여준 법원의 현실이다. 법원행정처의 판사들이 동료 법관들이 사찰을 한 것이 드러났다. 이들은 동료 법관의 정치적 성향과 법원행정에 대한 동의 여부, 개인적인 활동 등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동료 법관들을 딱지붙이고 분류하고 차별했다. 법관들이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학술단체를 만들었다고, 그리고 그 모임에서 대법원에 반대되는 발언을 했다고 위험한 판사로 낙인찍어 버렸다. 모두 직권남용행위이고 불법행위다.
 
범죄행위, 불법행위임을 알면서도 저지르는 사람을 양심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법관도 예외가 아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법원행정처 소속의 법관은 비양심적인 행위를 했다. 고위 법관이 명령했고 하위 법관이 이를 따랐다.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법관을 사찰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비양심적인 법관을 조직적으로 양성한 꼴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법관이라면 누구나 법원행정처 법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법관이 비양심적인, 양심파괴적인 행위에 노출되어 있다는 결론이 된다.
 
법관의 양심은 재판의 전제조건이다. 법관의 양심이 침해되면 법관의 독립이 무너진다. 법관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재판은 더 이상 재판이 아니다. 사법부 역시 더 이상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기능을 할 수 없다.
 
법관의 양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헌법이 증명한다. 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여야 한다”(제103조)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은 세 개의 기준으로 재판을 한다. 헌법, 법률, 양심이 그것이다. 이 중 법관을 일반 공무원과 다르게 만드는 요소는 양심이다. 헌법과 법률은 국민과 입법부가 만든다. 공동체의 의사가 집결된 것이 헌법과 법률이다. 따라서 다수의 의사가 중요하고 독단적이고 개인적인 해석은 금지된다. 이에 반해 양심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이다. 다수의 의견에 복종하지 않으며 권력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양심은 소수자 보호의 출발점이다. 강대한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기초가 양심이다. 그래서 법관의 양심을 제대로 만들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법관 독립의 핵심이고 사법부 독립의 기초이며 나아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근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법관의 양심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양심을 침해당하는 법관도, 양심을 침해하는 법관도 비참해진다. 양심 없는 법관, 양심을 침해당한 비참한 법관이 자유롭게 독립하여 재판을 할 수 있을까? 사법부 차원에서는 사법부의 존립근거가 없어진다. 양심 없는 법관은 재판을 해서는 안된다고 헌법은 말하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사법부의 기능 상실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할 수 없다. 동료 법관의 양심을 침해한 법관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킬 수 없다. 자기 출세와 조직 보호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양심을 침해당한 법관 역시 정치권력, 자본권력, 사법권력에 저항할 수 없다. 자신의 권리조차 지키지 못하는 법관이 목숨을 걸고 평범한 시민의 권리를 보호할 리 없다.
 
이번 사태의 대책으로 법원행정처 개혁이 논의된다. 당연한 귀결이다. 이번 법원행정처의 동료 법관 사찰, 사건 조작 시도는 국가정보원의 활동을 떠올린다. 동료 법관을 사찰하고 정치권력과 함께 사건을 조작하는 법원행정처라면 있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사법부 독립에 장애만 될 뿐이다. 폐지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법원행정은 작은 조직에 맡기면 된다. 법원행정을 지방으로 분권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제도개혁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제도개혁을 한다고 하더라도 법원 스스로 법관의 양심과 독립, 사법부의 존립근거를 침해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만큼 이 문제는 심각하다. 양심의 고통 없이 동료법관의 양심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그 뿌리를 파헤치고 제거하지 않는 이상 같은 행위가 반복될 것이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 과감한 인적청산, 제한 없는 처벌과 징계 등 철저한 자기반성과 희생이 없다면 우리는 존경할만한 사법부를 영원히 갖지 못할 것이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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