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토마토칼럼)'이명박근혜'는 한사람이었다
2018-01-31 06:00:00 2018-02-07 10:17:28
“이게 뭐지?”
 
기자실에 앉아 있던 필자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다. 2012년 18대 대선을 목전에 앞두고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다. 정권 계승을 두고 당 차원의 지원은 당연한 것이다. 재임기간 동안 구린 구석이 있다면, 임명권이 남아 있는 권력기관 수장 자리에 자신의 측근을 박아 놓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국가 최고 정보조직을 동원한 여론 조작이라니. 정도가 지나쳤다. 이것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으리라.
 
게다가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살뜰하게 살필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딸린 식구들이 있어 표면상으로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속내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계의 정설이었다. 지금도 정가에는 '친이', '친박'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 후임을 당선시키기 위해 원세훈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나선 것이다. 원 전 원장은 이 전 대통령의 심복 중 심복이다. 한솥밥을 같이 먹은 세월만 수십년이요, MB정부 집권 5년 중 4년1개월 동안 이 전 대통령은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을 맡겼다.
 
사건 신고접수 후 엿새만에 나온 경찰의 발표는 더욱 가관이었다. 이광석 서울수서경찰서는 그해 12월16일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컴퓨터에 대한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문재인·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을 게재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으나 발표시각이 압권이었다. 그날 밤에는 18대 대선후보 마지막 TV토론이 있었는데, 당시 박근혜 후보의 참패로 방송이 막 끝난 참에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말 그대로 코미디였다.
 
그렇게 정권은 또 이어졌다. 국가경제가 파탄 나고, 부패는 더욱 흉하게 부풀어 올랐다. 국가기강은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졌다. 어디를 봐도 새정부의 모습이 아니었다. 무감각해진 국민들은 집권 초기 대통령 해외순방에 따라간 청와대 대변인의 ‘여성인턴 성추행’ 사건을 보고서야 실소했다. 이때 국민 상당수가 자의와는 무관하게 영단어 ‘grab’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됐다.
 
사건의 주인공인 대변인은 한참을 칩거했다. 한때 찰랑거리는 헤어스타일로 반짝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지만, 세상속으로 다시 뛰어 들어온 때는 '주군의 탄핵'을 바로 앞둔 때였다. 늦게나마 흑기사를 자처하며 태극기를 높이 들고 탄핵 반대에 나섰던 그는 그러나 얼마 안 가 역풍을 맞았다. 이 이야기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가려지긴 했으나 박근혜 정부의 면면을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박근혜 정부는, 딱 거기까지였다.
 
다만, 한 가지 기능은 확실히 했다. 국민여론이 ‘4자방’을 비롯해 여러 의혹을 제기하며 이 전 대통령에게 진실을 물었지만, 박근혜 정부는 선방했다. 그 덕에 이 전 대통령은 예의 그 해맑은 웃음을 머금고 4대강 줄기를 따라 자전거 하이킹을 느긋하게 즐겼다. 그러나 역시 이렇게 탄생한 정부가 오래 갈 리 없었다. 집권 4년 1개월 만에 박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박근혜 정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순망치한이라 했던가. 박근혜 정부가 종말을 맞으면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이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정치보복’ 운운하면서 결속하고 있다. 추악한 민낯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정원 적폐청산 TF와 검찰이 조사한 결과를 종합하면 박근혜 정부는 MB정부의 아바타, 더 정확히는 한 몸쯤으로 보인다. ‘국정원 특활비 불법전용’, ‘불법사찰과 블랙리스트’ 등 각자의 대형 비리 범죄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이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허물 좀 덮어달라고 당선을 지원해줬더니 똑 같은 허물을 하나 더 만든 셈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MB정권 초기에 김대중·노무현 두 전 대통령을 음해하기 위해 만든 문건들이 박근혜 정부 집권을 위한 ‘야당 대선후보 죽이기’ 문건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이다. '정문헌·김무성의 NLL 문건'이 대표적이다. 최근 검찰은 원 전 원장이 김·노 두 대통령을 음해하기 위해 국정원 대북공작금을 끌어다 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근혜 정부를 대상으로 시작된 적폐청산 작업은 이제 끝나는가 싶더니 MB정부라는 더 큰 산 앞에 다다랐다. 혹자는 ‘피로감’, ‘대통합’을 운운하며 슬쩌 덮고 가는 것도 미덕라이고 한다. 그러나 틀린 말이다. 태평성대라고 착각하는 사이, 적폐는 이끼처럼 끼어 또 다시 산을 이룰 것이다.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태평성대도 아니지 않은가. 
 
최기철 사회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