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차기태의 경제편편)그것은 우정일까
2018-03-27 15:41:33 2018-03-27 15:41:33
 지난 23일 열린 효성의 올해 주주총회에서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이 사외이사로 다시 선임됐다. 지식경제부장관을 지낸 최중경 회장은 2014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 연임하게 된 것이다. 그가 사외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리자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채이배(바른미래당) 의원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고, 경제개혁연대도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최중경 회장의 사외이사 연임을 두고 시끄러워진 것은 그가 재임중 벌어졌던 일들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증권선물위원회는 효성의 분식회계를 문제삼아 과징금 50억원과 2년간의 감사인 지정조치를 내렸다. 징계대상이 된 것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회계장부였다. 최중경 회장이 사외이사를 맡은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더욱이 최 회장은 지난해 9월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열린 이사회에서 이상운 부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찬성했다. 이상운 부회장은 효성의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이 인정되어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2014년 과징금 2천만원과 함께 해임권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2년 넘게 버티다가 지난해 4월에야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었다. 
 
최중경 회장은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및 이상운 부회장과 경기고 동문이기도 하다. 효성 사외이사 가운데 경기도 동문은 또 있다. 권오곤 이사와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이들의 이름이다. 결과적으로 사외이사 7명 가운데 3명이 조석래 명예회장과 이상운 부회장의 경기고 동문으로 채워졌다. 또 김명자 후보는 조석래 회장의 부인인 송광자 부사장의 경기여고 동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학연으로 얽혀 있는 사외이사들이 과연 본연의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사실 지난 몇 년 사이 효성에서는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형제간의 반목이 거듭됐고, 분식회계 문제도 불거졌다. 분식회계도 한두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장기간 자행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까닭에 조석래 명예회장 부자와 이상운 부회장은 나란히 사법처리와 금융제재의 대상이 됐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조세포탈과 횡령, 위법배당 등의 혐의로 2016년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에 벌금 1365억원을 선고받았다. 조 명예회장의 아들 조현준 현 회장은 2016년 횡령 혐의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고 항소했다. 지난 1월에는 200억원 규모의 횡령 배임 혐의로 다시 불구속기소됐다. 
 
게다가 효성은 상습적인 회계조작범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지난 2014년 증권선물위원회에서 과징금 20억원을 부과받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50억원의 과징금을 또 받았다. 이마저  사실은 너무 가볍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지상욱(바른미래당) 의원은 효성이 지난 2005년부터 2016년까지 효성이 저지른 회계부정 규모가 1조8천억원을 헤아린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이들 동문 사외이사들이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했는지 모르겠다. 사외이사라면 대주주 경영진의 일탈을 견제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말도록 타일러야 한다. 그러나 조석래 명예회장 부자가 거듭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는 것은 사외이사들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는 반증 아닌가. 
 
동문들이 사외이사로 영입된 것은 물론 효성만의 일은 아니다. 경제개혁연대의 주요기업 주총의안 분석결과에 따르면 금호산업에서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광주제일고 동문인 강정채 사외이사 후보가 3년 임기의 사외이사로 추천됐다. 현대중공업 사외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린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SK네트웍스의 이천세 변호사와 DB손해보험의 이승우 박상용, OCI의 장경환 새 사외이사 등은 모두 오너일가와 같은 고등학교 또는 대학 출신이다. 미래에셋대우의 박찬수 신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은 최현만 수석부회장의 광주고 선배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사회는 지연과 학연을 무척 중시한다. 동문 사이의 우애가 깊고 그 우애가 올바르게 발휘된다면 회사 경쟁력을 높이고 오너경영자의 일탈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정의 힘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친구의 것은 공동의 것”이라며 우정의 소중함을 가르쳤다. 로마시대의 변호사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도 친구란 ‘또다른 자아’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애가 올바르게 발휘될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치이다. 앞으로는 동문 사외이사들이 우정의 힘을 통해 오너 경영자를 올바른 경영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차기태(언론인)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