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보선 기자] #. 서울 가락농수산물 종합도매시장의 중도매상으로 주로 대기업에 납품하던 A씨는 연단가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았다.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가격대가 항상 유동적이지만, 편의를 위해 1년 단위의 고정단가를 요구하는 주문에 무리하게 공급을 맞춘 것이 문제였다. A씨는 그간 운영한 저장시설뿐 아니라 직원 20명의 생계도 포기해야 했다.
#. 경기도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중도매상 B씨는 식자재 납품처인 반찬가게에서 거래처를 바꾸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B씨는 새벽 경매를 통한 농산물 유통을 업으로 삼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최근처럼 어려운 적이 없었다고 느낀다.
3일 현장에서 만난 공영도매시장법인과 도매상인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컸다. 이들은 대기업이 식자재유통에 뛰어든 이후 도매법인, 중도매상이나 납품 하청업체들의 성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지만 보호장치가 전무한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구리농산물도매시장 내 도매상 사무실이 밀집한 골목이 한적한 모습이다. 이곳 상인들은 매일 새벽 경매를 통한 농산물 유통을 업으로 삼고있지만 최근 대기업의 시장진입으로 일감을 잃어가고 있다. 사진/김보선 기자
구리도매시장 상인은 "골목시장이나 식당 등에 납품을 하던 물량이 상당부분 (대기업 쪽으로)이탈하면서 파산하는 소상인들이 늘고 있다"며 "대기업 계열 식자재 유통사들에 밀려 일감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이들이 가정식 제공과 아파트 조식뷔페까지 나서고 있어 상황이 얼마나 더 악화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을 막을 수 없다면 공정경쟁 환경은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대기업이 납품받을 식자재 업체를 고르는 과정에서 '비딩(bidding·호가)'이 불투명한 거래가 성사되는 일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가락시장 관계자는 "대형병원 같은 큰 조직은 대부분 대형 식자재 업체로부터 납품을 받는데, 이들이 다시 우리 같은 중소업체에 납품을 하라며 비딩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A~C까지 업체 중 적정가를 제시한 곳에 기회를 줘야 하지만 선행 단가를 제시해 자신들이 원하는 거래처가 적정가를 제시하도록 이용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결국에는 대형 업체들 위주로 비딩이 이뤄진다"고 토로했다.
기업간(B2B) 식자재유통 시장은 성장세가 유지될 전망이다. 식자재유통의 전방산업인 외식업이 성장세며 단체급식도 위탁급식의 증가로 연간 2~3%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가정간편식 시장도 급속히 성장 중인데, 식품제조가공업 규모가 성장하는 것도 식자재유통업의 성장 요인이 된다. 대기업으로서는 성장 가능성이 큰 식자재유통 시장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여 영세 상인들의 고충은 심화될 전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들은 규모의 경제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식자재공급 원가에서도 우위에 있다"며 "영세상인에 비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납품사들을 설득하기도 쉬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관계자는 "농수산물 도매거래는 농업인들이 상인과 직접 거래할 경우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 이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이를 위해 도매법인은 위탁받은 농산물을 경매 등 공정한 방법으로 대신 팔아주는 것"이라며 "골목상권은 지자체 차원에서도 상생 등에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는 데 반해, 도매상인들은 보호와 관심에서 떨어져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보선 기자 kbs726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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