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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정은과 왕후닝의 베이징 역 조우를 달리 생각하다
2018-05-08 06:00:00 2018-05-08 06:00:00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방문 기간 중국은 공식 국빈 방문에 준하는 응대로 양국 관계를 복원시키려고 노력했다. 송타오 대외연락부장이 단동에 직접 나가 국경을 넘은 김정은 전용 열차를 영접했고 귀국 길에도 마찬가지였다. 베이징 역에서는 왕후닝 정치국 상무위원이 직접 플랫폼에 나가 김 위원장을 영접했다. 
 
북한 김 위원장의 전격적인 방중은 사실 양국의 정상 국가관계 복원이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기초한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 북미정상회담 예정 등 빠르게 변화하는 한반도 정세에서 중국의 패싱 우려는 북한과의 전략관계 복원이 필요하다는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목격된 왕후닝의 김 위원장 영접과 송영은 현 국면을 뛰어 넘어 북한이 가려고 하는 멀리 미래의 방향 관련해 훨씬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일단 현 대화 국면을 보면 북한의 전격적인 비핵화 프로세스 추진은 경제건설을 통한 경제회복의 신호로 읽힌다. 이미 북한은 핵과 경제의 병진 노선에서 핵 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이상 다음 단계인 경제로 국가발전의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라는 여섯 글자로 분명하게 확인됐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발표한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이 이제 본격적으로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되돌릴 수 없는 문구로 세계에 공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면 전환에서 북한에 필요한 것은 국제적인 양호한 지원 환경의 조성이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그동안 공언했던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경제건설’로 대체하겠다는 노선 변화에 대한 완벽하고 되돌릴 수 없는 논리가 필요하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북중 정상회담. 종선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내부 문제가 간단치 않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비핵화를 천명하고 공식적으로 경제건설을 당과 국가의 주요 방향으로 설정한 이상, 이를 노동당 당원들과 국민들에게 충분하게 설명해줄 논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매우 장기간 이른바 ‘북한식’ 논리에 충실했던 북한의 갑작스런 노선 변화를 일반 당원들과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에게 자신의 역사적 경험과 실천 논리 그리고 이를 뒷받침했던 이론을 북한에 전파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갖게 될 것이다.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통해서 중국과 같이 체제가 안정되고 특히 노동당이 완전하게 전권을 장악하는 안정적인 모습으로 변해야 지금과 같은 전통적 우호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왕후닝은 바로 중국의 개혁개방 논리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다. 지난해 10월 말 19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른 뒤 여섯 달 정도가 지났지만 왕후닝은 여간해서는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게 시진핑 주석의 논리를 전파하고 있다. 그런 그가 김 위원장을 맞으러 베이징 역에 두 번 모습을 드러냈다. 공개 석상에서 표정이 읽히는 것 자체를 경계할 정도로 철저하게 무표정을 유지하던 왕후닝도 베이징 역에서 김 위원장을 송영할 때는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이 장면은 북한이 경제건설로 나아가는 길에서 일반당원과 국민들을 설득할 논리가 필요하다는 내부 고민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왜’ 경제건설로 나아가고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중국의 경험에서 찾으려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든다는 점이다. 그럼 북한은 중국의 누구와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인가? 그 답은 바로 왕후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왕후닝이야말로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한 탁월한 이론의 소유자이면서 현재도 시진핑 집권의 논리를 가장 충실히 디자인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만약 중국의 경험과 지원을 바탕으로 경제건설로 나아간다는 이 논리를 정교하게 다듬고 이론화하여 일반당원과 국민들에게 이제는 핵과 선군정치가 아닌 경제건설이라는 완전한 논리를 제공할 수만 있다면 북한의 경제건설은 광폭의 속도로 나아가는 기반을 다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북한식 개혁개방에 논리적으로 완전한 이론체계를 구축한다면 북한은 매우 빠르게 경제건설로 나아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좀처럼 유연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왕후닝이 베이징 역에서 김 위원장과 만나 만면에 웃음을 짓고 김 위원장 또한 기꺼이 웃음으로 화답한 감춰진 속내이기를 기대해본다.
 
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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