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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누가 헌법을 죽였을까
2018-05-10 06:00:00 2018-05-10 06:00:00
헌법이 죽어가고 있다. 헌법에 의하여 운영되어야 할 국가시스템이 마비된 것은 헌법이 죽었음을, 헌법이 작동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헌법에 의하면 정부는 예산안과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과 법률안을 심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함께 일을 해야 나라가 굴러간다. 국회는 정부의 예산안, 법률안에 문제가 있다면 고치고 문제가 없다면 통과시키면 된다. 아예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국가를 운영하는 행정부의 업무를 방해하는 일이다. 행정부의 헌법상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든, 나라가 망하든 상관없다. 자기 주장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너무 무책임하다. 정부에 대해 무책임하고 국민에 대해 무책임하다. 그리고 헌법에 대해서는 아예 무책임을 넘어 헌법의 마비를 초래하고 있다.
 
헌법의 죽음, 마비는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 본 헌법의 죽음은 대통령 발의 헌법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사장된 것이다. 대통령의 헌법 개정발의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한이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전 행정부를 대표하여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 더해 학자와 실무가, 시민단체 등 전문가의 의견, 광범위한 국민의 의견도 더해졌다. 그동안 제기되어 온 헌법 개정 논의도 대폭 반영되었다. 이처럼 대통령의 헌법개정안은 대통령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거의 모든 역량이 모여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야당은 이를 간단하게 무시했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행정부, 국민을 무시했다. 헌법이 보장한 헌법개정 절차를 무시함으로써 헌법 개정절차를 사문화시켜 버렸다.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권한을 무시함으로써 헌법을 죽였다.
 
위 두 가지 사례가 대표적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헌법대로 운영되지 않는다. 헌법의 기본권도 보장되지 않고 있고 국가기관이 역할분담을 통해 함께 국정을 운영하고 있지도 않다. 헌법의 마비는 국가의 마비를 의미한다. 헌법의 죽음은 국정 운영의 중단을 말한다.
 
헌법이 죽은 이유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정치권, 구체적으로는 야당이 헌법을 존중하지 않고 헌법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이 자신에게 부여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국가기능을 마비하는데 권한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보수 야당의 헌법 무시행위는 한두 해 벌어진 일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헌법을 무시하는 것이 한국의 보수 야당에게는 역사와 전통이 된 느낌이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한국의 헌법을 죽인 자는 누구일까? 헌법대로 국가를 운영하지 않고 헌법을 마비시킨 자들은 누구일까? 헌법상 인권을 국민에게 보장하지 않은 자, 헌법상 권한을 초과 행사하여 권력을 유지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챙긴 자, 다른 헌법 기관의 마비를 초래한 자, 법률의 규정을 앞세워 헌법을 기능정지 시킨 자,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 자,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체제가 정당하다고 한 자들이 바로 헌법을 죽인 자들이다.
 
구체적으로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완성하고 통치한 정치인들, 정치인들의 헌법 파괴행위를 수사와 재판을 통하여 뒷받침한 검사와 판사들, 헌법 파괴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학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의 카르텔은 군부독재 시절 완성되어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군부독재의 전통은 한국의 보수정당으로 이어지고 있고, 독재친화적인 수사와 판결은 대법원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학자들의 반인권적, 반민주적 해석은 법률 교과서에 다수설이라고 남아 있다.
 
최근 이들은 정치적 자유, 사법부의 독립,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없다. 대규모 인권탄압 사태의 진상이 밝혀지고 일부 사건은 재심으로 무죄가 선고되고 인권친화적인 이론이 도입되고 또 체계화되어도 반성과 성찰은 없다. 과거사 정리를 마치 자신들이 해야 하는 것처럼 오히려 나선다. 과거에는 힘으로 자신의 의견을 강요했는데 지금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고 있다. 과거에는 힘으로 헌법을 마비시켰는데 지금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을 죽이고 있다.
 
헌법이 마비되면 국가는 마비된다. 헌법이 죽으면 국민이 죽는다. 실제로 헌법유린 사태가 벌여졌던 지난 정부 하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헌법 지키기, 헌법 살리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절이다. 헌법을 마비시키고 있는 국회를 법의 날(4월 25일)에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겁다. 언제쯤 헌법이 살아 있어 모든 권력을 그 아래에 두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것 같다.
 
 
김인회 인하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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