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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아파트는 왜 똑같을까
2018-05-10 14:55:17 2018-05-10 14:55:17
통바지에 워커, 나팔바지, 꽉 조이는 교복. 한 때 유행했던 패션이다. 계절에 따라 혹은 해마다 달라졌던 유행이 요즘은 광속으로 변한다. 유행 주기는 짧아지고, 유행을 넘어 맞춤형 패션이 대세로 떠오르기도 한다.
 
입는 것 만큼 중요한 주거환경은 어떨까. 아파트의 유행 주기는 너무 길어 멈춰있는 듯하다. 특히 외관의 경우 브랜드를 가리면 어떤 건설사의 아파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역세권 등 입지가 좋은 지역은 찍어낸 듯한 아파트가 빽빽하기까지 하다. 아파트를 '닭장', '성냥갑'이라고 표현한 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가치를 높일까보다 얼마나 많이 지을까를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면서 국내 건설사들은 아파트사업으로 수익을 불려왔다. 국내 대형건설사들의 주택사업 의존도는 50%가 넘는다. 한 대형건설사의 경우는 주택사업에서 전체 수익의 90%가 발생하는 구조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자가보유율은 전체 가구의 61.1%에 달했다. 열 명 중 여섯 명은 내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래 최고치다. 살 곳이 많아졌다는 의미이고, 건설사들도 그 만큼 수익을 거둬들였다는 얘기다.
 
이는 위기이기도 하다. 집을 살 사람은 이미 많이 샀다. 정부 규제로 투자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새로운 실수요까지 줄어든 것이다.
 
'집 만 있으면 된다'라는 인식도 바뀌고 있다. 이제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해야 할 때다. 송도가 대표적인 예다. 송도는 국내에서 이국적인 도시로 꼽히는 곳 중 하나다. 특히 개발 초반에 지어진 1공구 내 아파트들은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며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이 때문에 드라마, 광고 촬영 장소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 최대 청약경쟁률이 송도에서 나온 것도 차별화된 주거 환경이 한몫했다.
 
그러던 송도가 개발에 난항을 겪으며 하나 둘 땅 주인이 바뀌게 됐다. 이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판상형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송도에는 교통, 서울과의 인접성 등 여러 주거 요인보다 도시 경관을 우선의 가치로 삼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도시들과의 차별화가 사라지는 데 대해 주민들의 분노가 커지는 이유다. 이들은 건설사에 민원을 제기해 아파트 외관의 도색을 바꾸기도 했다. 이제 아파트도 소비자가 선택하는 시대인 것이다.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개성 있는 내 집'을 추구하는 이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시대 흐름에 맞춰 아파트도 유행을 바꿀 때다.
   
임효정 산업 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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