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눈 가리는 사회)③“정책수립·제품제조 때부터 시각장애인 참여 보장해야”
관련법 많지만 모두 실효성 없어…사회적 관심 없어 법 제정·개정 표류 장기화
입력 : 2018-05-16 06:00:00 수정 : 2018-05-16 18:10:04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전문가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제대로 된 대체정보를 제공하려면 점자, 음성, 픽토그램, 유니버셜 디자인 등을 통해 이용자 편의를 배려한 환경 조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법과 제도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건물 건축부터 제품 디자인까지 장애인의 입장을 배려하는 사회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90년부터 점자 위치까지 규정한 미국 장애인법
 
1990년 미국에서는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장애인법을 만들었다. 이는 고용, 정부와 공공서비스, 교육, 공공·민간시설, 원거리 통신 등을 이용하는데 비장애인과 동등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차별을 금지해, 장애인의 완전한 시민권을 천명한, 세계 최초의 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미 법무부는 장애인법을 근거로 구체적이고 강력한 법적효력을 지닌 점자 편의시설 관련 규정, ‘접근 가능한 설계를 위한 미국장애인법 표준’을 2010년 발표했다. 이 표준은 2012년 이후 신·개축한 주정부와 공공건물, 공공·상업시설물에 각 층 문설주와 주 출입문, 승강기 입구에 점자 표기, 승강기 버튼 점자 표기 등을 준수하도록 구체적인 위치까지 규정했다.
 
일본, 제품 설계부터 ‘장벽’ 제거
 
일본에서는 1994년 제정된 하트빌법과 2000년 제정된 교통배리어프리법을 근거로 공공교통지침과 도로정비지침에 점자 관련 규정을 포함해 장애인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2006년 이들 법을 통합해 만들어진 ‘배리어프리 신법’은 노인, 장애인, 임산부 등을 위해 공공교통기관과 건축물, 도시공원, 야외주차장, 보행 공간을 신설할 경우 이동 편의성과 적합성 준수 의무를 부여한다.
 
의약품과 생활용품의 점자 표기의 법적 근거는 아직 없지만, 1990년대 이후 사회적으로 ‘공용품’이란 개념이 정립됐다. 노인과 장애인에게 편리하면 비장애인에게도 편리하다는 개념으로 한 주류회사가 캔에 점자를 표기하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회사가 증가하며 확산됐다. 제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장애인의 장벽을 제거하자는 일종의 사회 운동의 결과다.
 
관련법만 14개지만 실효성 없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기 필요성은 이전부터 꾸준하게 제기됐다.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된 점자법을 비롯해 공직선거법, 약사법, 여권법, 저작권법, 주민소환법, 자전거법, 화장품법, 우편법 등 점자 관련 법률만 14가지에 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법령이 의무조항이나 처벌규정, 관리감독기관 지정 등의 강제절차 없이 포괄적으로 선언하거나 가능하도록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며 시각장애인들을 방치하고 있다. 이로 인해 14가지에 달하는 법을 하나하나 개정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 속에 각 이해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폐기되는 일이 매 국회 회기마다 빚어지고 있다.
 
점자표기 의무화 법안 업계반대로 표류
 
정의당 윤소하 국회의원은 지난해 건강기능식품과 의약품에 점자 표기가 이뤄지지 않아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이 제한받는다며 건강기능식품법과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들 법안이 시각장애인 건강·안전과 직결돼 안전상비의약품만이라도 점자 표기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에도 아직 법안은 업계에 반대에 부딪혀 잠자고 있다.
 
윤 의원은 “건강기능식품과 의약품의 점자 표기가 단순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발의했으나 아직 상임위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며 “시각장애인의 기본적인 안전과 생활을 위해 법안 개정을 추진했으나 속도가 더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점자법 등 실효성 강화 필요”
 
대안으로 김영일 조선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선언 수준에 그치고 있는 점자법을 대대적으로 강화해 점자나 음성 등 대체정보 제공을 의무화하고 처벌조항이나 관리감독을 명시해야 한다”며 “사회는 발전하고 있는데 정보 접근이 막히면서 시각장애인은 기본적인 생명과 안전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가전제품이나 생활용품의 경우도 점자를 기본으로 하되, 제품에 따라 음성이 더 나을 수 있다”며 “어느 제품을 어느 정도로 점자나 음성정보 제공을 의무화할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편의시설, 생활용품, 가전제품 모두 첨단기술의 발전 속에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외면받고 있는 점자·음성 등 대체정보를 발맞춰 보급하려면 알맞은 규제를 만들도록 속도있는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호식 하상장애인복지관장은 필요한 규제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소수일 수 밖에 없는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배려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관장은 “같은 TV의 경우 수출용 TV에는 대체정보를 제공하고, 내수용에는 제공하지 않았을 때 이를 막기 위한 규제는 필요하다”며 “이와 동시에 픽토그램이나 유니버셜 디자인 등이 확산돼야만 시각장애인의 독립적인 자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설계부터 시공, 감리까지 각 절차에 시각장애인 당사자가 모니터링한다면 엉터리 점자 표기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며 “건물 건축부터 제품 디자인까지 장애인의 편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 롯데리아 종각역점에서 한 시각장애인이 점자메뉴판으로 메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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