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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건설업계, 적폐청산에 동참하자
2018-05-20 09:39:08 2018-05-20 17:03:03
최용민 산업2부 기자
어렸을 적 아버지가 중소 하청업체를 운영하셨다. 직원 5명도 안 되는 작은 전문건설 하청업체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매일 일보다 다른 곳에 더 신경을 쓰시는 듯했다. 전화기를 붙들고 공사비가 언제 들어오는지 확인하는 게 일상이었다. 당시 공사를 하고도 공사비를 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소송으로 해결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린 나이에 물건을 팔고도 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현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20여년이 지났어도 건설업계 적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불법을 일삼는 것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정당하게 지불해야 할 돈을 주지 않는 관행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얼마 전 시티건설과 이수건설, 동원개발 등 중견 건설사 3곳이 하도급대금을 어음으로 주고 어음할인료를 떼먹다가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3억원을 부과 받았다.
 
현행 하도급법은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하도급대금을 지급할 경우, 원사업자가 연 7.5%의 할인료를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원청업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지난 2015~2016년에 무려 384개 하청업체에게 어음할인료 25억여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하청업체가 이를 문제 삼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하청업체들은 공사비라도 안 떼이기 위해 어음할인료는 그냥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뜩 아버지 모습이 생각났다.
 
건설업계에 남아 있는 관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건설도급 순위 4위인 대형건설사 대림산업의 전·현직 임직원들이 건설현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청업체로부터 지속적으로 금품을 받아 챙긴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들은 업체 평가나 설계 변경, 추가 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했다. 사실 충격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건설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관행이었다는 것을 다 안다. 건설현장에서 원청업체는 절대적인 ‘갑’이다. 하청업체가 마음에 안 들면 시비를 걸어 처음부터 공사를 다시 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냥 돈 얼마 주고 끝내는 것이 비용이 덜 든다.
 
아울러 최근에는 재건축 수주전에서 대형건설사들이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살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관련해 국세청의 세무조사도 진행된다는 말이 나온다. 이들은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유로 이런 일들을 계속 해왔을 것이다. 업계의 말을 들어보면 재건축 수주전은 말 그대로 ‘X물’이라고 한다. 온갖 편법과 불법이 난무하는 무대다. 이 때문에 한 대형건설사는 이런 관행을 없애기 위해 재건축 수주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말이 진실이길 바란다.
 
“내가 싼 X은 내가 치우는 것” 개그맨 김제동은 한 방송에서 ‘적폐청산’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세대가 만들어 놓은 적폐는 우리세대가 치우고 가야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시대적 과제다. 일각에서는 적폐청산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특히 건설업계의 적폐는 너무 많이 쌓여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받은 충격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제발 당신들이 싼 X는 당신들이 치우고 가시라.
 
최용민 산업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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