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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취업비리' 김학현 전 부위원장, 징역 1년6개월
정재찬·신영선 집유 "기업 취업 요구 위력·업무방해 인정"
2019-01-31 15:33:36 2019-01-31 18:23:27
[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공정거래위원회 퇴직자들이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를 받는 전현직 공정위 간부 가운데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에게만 징역형이 선고됐다. '내부출신'인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과 신영선 전 공정위 부위원장에게도 유죄가 선고된 반면 '외부출신'인 김동수·노대래 전 위원장에게는 같은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성창호)는 업무방해와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전현직 공정위 간부 12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김 전 부위원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김 전 부위원장의 보석이 취소돼 재수감됐다. 정 전 부위원장에게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신 전 부위원장에겐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받지 않고 제한기관에 취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철호 현 부위원장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공정위는 중앙행정기관으로 공정한 시장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대기업 등 업무권한을 행사하는 부분이 광범위하고 대기업에서 공정위 관련 현안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 관계자들도 ‘하는 수 없이 공직자를 채용하게 됐다’고 진술했고, 대부분 공정위가 먼저 기업에 취업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정위의 위력이 지속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정위 내부 취업 요청 절차에 대해 “운영지원과장이 퇴직자 취업과 관련해 부위원장에게 상세하게 보고 및 상의하고 이후 위원장과 사무처장에게 보고하는 식의 업무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공정위는 규모가 크지 않아 간부급 인사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공정위가 기업체에 취업자리를 먼저 요구했을 경우 기업이 공정위의 요청을 거절하고 채용을 하지 않는 방향을 정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정 전 위원장이 위원장으로 구체적으로 알지 않았더라도 기존 업무 경험에 비춰 모두 알고 승인했을 것”이라며 “공정위 역할이나 위상에 따라 정 전 위원장의 재직중 공정위 역할이나 위상을 통해 충분히 범행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신 전 부위원장에 대해서도 “20년 남짓 공정위에 근무하며 사정을 잘 알 수밖에 없던 위치였고, 운영지원과장이 ‘취업 현황을 이미 신 전 부위원장에게 설명했고, 김 전 부위원장과 함께 공정위의 정형화된 관행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며 “이런 점에 비춰 신 전 부위원장도 퇴직자 취업에 대해 공정위가 기업에 요구한 것을 알고 승인한 걸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김 전 부위원장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기업체 대표로부터 딸의 취업기회를 제공받아 이에 대한 뇌물을 건넸다”며 “딸의 생활비나 학비를 모두 부담해 부양했고, 취업기회를 제공받은 것이라 사회통념상 본인이 직접 제공받은 것으로 보여 유죄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외부출신 위원장들에겐 내부 출신인 전직 간부들과는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동수 전 위원장에 대해 “위원장 재직 당시 5명 퇴직자가 기업에 취업해 공정위 차원의 취업을 지시했다는 여지가 있다”면서도 “김 전 위원장은 외부 출신 인사로 내부 관행이나 조직 내 구성원 면면을 알기 어려운 위치에 있고, 공정위 관계자 진술에 따라 인적네트워크나 유대관계 등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내부출신들과 차이가 있다”고 결론냈다.
 
또 “오히려 김 전 위원장은 취임 이후 퇴직자가 관여하는 외부자와의 사적접촉을 제한하는 윤리강령 지침을 제정 및 개정하고 감찰팀을 신설해 강도높은 조치를 시행했다”며 “공정위가 기업간의 유착관계를 의심받을 상황을 공정위 스스로 만드는게 돼, 김 전 위원장이 스스로 모순된 행동을 해왔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노 전 위원장에 대해서도 “김 전 위원장과 유사하게 외부출신 인사여서 상세하게 알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다”며 “위원장으로 재직한 1년 8개월동안 퇴직자 2명만 기업에 취업했고, 당시 과장이 노 전 위원장에 보고한 사례가 없다는 진술도 있었다”고 말했다. 
 
양형에 대해선 “공정위 핵심간부로 경제활동 주체에 대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활동 보장해야 했지만 오히려 영향력을 이용해 공정위 출신 퇴직자들 취업 자리 마련 및 관리했다”며 “기업으로선 채용대상자 능력이나 적합성을 판단하지 못한 채 채용하게 돼 업무에 방해를 받았고, 이런 점을 비춰보면 엄중한 책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2000년대 초반부터 공정위 내 퇴직자 취업자리를 만들어주는 관행이 생겨 피고인들도 관행에편승했다”며 “범행 당시 위법성의 인식 정도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일부 기업은 공정위의 채용 요구 자체를 거절하는등 공정위의 위력 정도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던 점을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정 전 위원장 등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공정위에 재직하면서 퇴직 예정인 간부들을 채용하도록 민간기업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지난해 8월 기소됐다. 16곳의 기업은 당시 강요에 못 이겨 공정위 간부 18명을 채용했고, 임금으로 총 76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 불법취업'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김학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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