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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대출규제가 집값 내성 길러
2019-05-27 15:02:50 2019-05-27 15:03:27
견고하던 ‘분양 불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8.6대 1. 올해 1분기 서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한 자릿수로 급락했다. 지난해 4분기 37.5대 1과 나란히 보면 대조가 뚜렷하다. 
 
저무는 황금기를 아쉬워하기엔 긍정적인 면이 적지 않다. 집을 여러 채 가지고도 욕심 내는 ‘아파트 부자’가 집값을 끌어올려 무주택자, 실수요자들이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잃는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이에 문재인정부는 투자 수요와 집값을 꺾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전문가들은 약발이 먹혔다고 입을 모은다.
 
약의 부작용은 내성이다. 사전·사후 무순위청약을 이용한 현금부자들의 ‘줍줍 현상’이 부동산 시장의 이슈로 부상했다. 실수요자가 청약에 당첨돼도 대출 규제로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면서다. 대출은 이제 내 집 마련의 자금을 견인하기에 역부족이다. 정부가 지정하는 투기과열지구에서는 무주택자나 서민 실수요자여도 대출 범위가 줄어든다. 서울은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다. 투자 수요가 물밑에서 꿈틀거릴 수 있는 까닭이다. 
 
고분양가 책정의 여지도 남아있다. 9억원 이상의 아파트를 내놓는 일부 건설사들은 중도금 연체를 허용하는 방식 등으로 계약을 유인한다. 분양가가 9억원을 넘으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중도금 대출 보증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시행사·시공사 보증으로 중도금 대출의 길을 열어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수요자의 자금 부담은 잠시 덜어낼지언정 불법을 비껴간 편법이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연체 리스크를 분양가에 반영하거나 수요자의 자금 부담을 줄였으니 가격을 높일 수 있다는 명분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수요자의 부담은 아직 무거워 보인다. 청약에 당첨돼도 자금난 때문에 계약의 벽은 여전히 높다. 중도금 연체 등의 편법에 편승하려면 큰 맘 먹고 9억원 이상의 집을 사야 한다.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꾀한다는 정부의 이정표가 풍선효과로 흔들리는 모습이다.
 
정부 규제의 효과는 분명하다. 집 사기가 어려워졌다. 대출 가능한 자격을 강화하면서 실수요자 중심의 분양 시장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의 자금줄까지 묶어놓은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무주택자와 실수요자를 더 세밀히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나이, 소득 등에 따라 자격 요건을 조밀하게 나누고 맞춤식으로 대출 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성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세심한 보완책이 필요해 보인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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