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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젊어봤던 늙은 사람에게
2020-01-02 08:00:00 2020-01-02 08:40:19
유력 보수신문 논설위원의 글을 읽는다. 1958년생, 27살에 해당 신문사에 입사해 평생 한 직장만 다닌 그는, 느닷없이 청년들에게 "늙어봤느냐"고 묻는다.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질문이다. 그가 화난 이유는 18세부터 투표권을 준다는 발상이 괘씸해서다. 18세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면 안된단다. 왜냐하면 고3 교실이 정치판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계 90%가 넘는 국가에서 18세에 선거권을 준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
 
그에게 18세 선거권은 포퓰리즘이다. 그는 고3이 "포퓰리즘 면역 항체"가 없다며 걱정한다. 하지만 선거제도 대신 "12명으로 구성된 현자회의"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야말로 포퓰리스트다. 더 많은 사람이 선거장으로 나오면 벌어지는 일에 대해, 그는 너무나 잘 안다. 청년들이 어느 정당에 투표할지 그는 너무 잘 안다. 그러니 투표의 4대원칙까지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보수는 두려움이라는 정서를 공유한다고 한다. 한 때 젊어봤던 이 늙은 사람은, 청년들이 주도할 나라가 두렵다.
 
지난 주 한겨레는 청년 75%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설문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젋은 여성이 더 높은 비율로 한국을 떠나려 한다. 이 조사결과에서 더욱 놀라운 점은, 기성세대 남성의 66%가 한국을 떠나겠다고 대답한 사실이다. 기성세대 여성은 64.6%만 한국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늙은 논설위원의 남성 친구 중 3분의 2가 기회만 있다면 한국을 떠나겠단다. 그들도 포퓰리즘에 면역항체가 없는 걸까?
 
며칠 전 새로 임명된 34세 핀란드 여성 총리가 화제였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핀란드 제1당과 연정 중인 정당의 모든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2015년 캐나다는 40대의 젊은 트뤼도 총리를 뽑았고, 그는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우면서 "지금은 2015년"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20대 한국 국회의 당선인 평균 나이는 55.5세였고, 2020년엔 59.5세가 된다. 환갑국회다. 한국은 사회 전분야에서 직업별 평균 연령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다. 심지어 한국 국회는 일본 국회보다 늙었다. 제론토크라시, 고령자 지배사회가 한국을 집어삼키고 있다.
 
<불평등의 세대>를 쓴 이철승 교수는, "세대, 계급, 위계: 386 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라는 논문을 통해 현재의 20대부터 70대 이상에 이르는 노동시장 참가자들은 두 차례의 금융위기가 노동시장에 가한 충격을 각기 다른 입장과 위치에서 겪었기 때문에, 소득과 자산의 축적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이를 '동시대의 비동시성'이라고 말한다. 즉,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젊어봤던 늙은 논설위원과 청년들은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금융위기로 벌어진 격차는 복구 불가능한 것이다. 청년들의 좌절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 두 번의 금융위기에서 이익을 본 세대가 바로 386 세대, 즉 늙은 논설위원이 속한 그 세대다. 이철승 교수에 따르면, 386 세대는 산업화 세대가 구축한 연대를, 1997년부터 2016년에 걸친 20년의 정치권력 투쟁을 통해 사실상 와해시키면서, 점유의 정치를 수립했다. 그들은 정치영역 뿐 아니라 기업조직 내부에서도 다른 세대보다 이른 나이에 임원에 진입했고, 시민사회의 조직도 강력한 네트워크로 점유했다. 바로 이 강력한 한국형 위계체제, 즉 네트워크 위계가 현재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상징하는 권력이다.
 
조국 사태로 국론이 분열되고,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고령자 지배사회를 위한 인사를 진행중이다.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모조리 70에 가깝고, 주요 고위공직자 중에 30~40대를 보는 것 자체가 어렵다. 기득권이 된 386세대의 모순적인 정치, 문재인 정부 또한 고령자 지배사회를 다른 방식으로 구축하려는 네트워크 위계조직이 되어가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이 딜리버리히어로와 인수합병을 결정했다. 고령자들로 인해 정치와 경제 어디에서도 좋은 뉴스를 듣지 못했는데, 간만에 기쁜 소식이다.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는 1976년생, 41세다. 고령자를 벗어나기만 하면, 한국에 희망이 이렇게나 많다. 늙은 논설위원의 신문사에도 40대 논설위원이 탄생하길 바란다. 그게 유일한 희망이니까.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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