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표준화기구(ISO)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각종 표준을 제정하여 통용시키는 국제기구이다. ISO의 표준 가운데 ISO26000은 ‘사회책임에 관한 표준’을 의미하는데, 가치나 규범에 해당하는 사회책임을 표준화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2010년 11월 발효된 ISO26000은 이같은 어려움을 반영한 듯 표준이 아니라 지침(guidance)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ISO26000가 적시한 기본 7개 원칙과 7개 핵심 분야는 사회책임의 대강을 짐작케 한다. 21세기에 기업 등 조직에게 요청되는 사회책임의 큰 틀을 제시한 셈이다. 7개 원칙은 책임성, 투명성, 윤리적 행동, 이해 관계자의 이익 존중, 법규 준수, 국제 행동 규범 존중, 인권 존중이며, 7개 분야는 조직 거버넌스, 인권, 노동 관행, 환경, 공정 운영 관행,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와 발전이다.
7개 분야 혹은 주제는 국내외 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또는 사회책임보고서)의 국제표준으로 간주되는 GRI(G3)의 작성대상 분류와 일맥상통한다. GRI는 크게 경제, 환경, 사회의 3개 부문으로 나뉘며, 이중 사회는 다시 제품책임, 인권, 노동, 사회영향의 4개 하위 부문으로 구성된다. ISO26000과 GRI가 내용상 유사성을 보인다. 유엔 글로벌 콤팩트(UNGC)의 ‘10대 원칙’ 또한 같은 가치가 투영되어 있다.
한마디로 사회책임의 국제 거버넌스에 관한 한, 뚜렷하고 공통된 정신이 지구촌 차원에서 관철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21세기 들어 ‘사회책임 라운드’의 도래를 예상하기도 하였으나 서브 프라임 사태로 ‘생존 라운드’가 열리면서 사회책임 의제는 잠시 잊혔다.
그러나 서브 프라임 사태의 충격에서 회복되면서 사회책임은 다시 전세계적 의제로 확고하게 부상하고 있으며 속도와 수준에는 이견이 존재하지만 조만간 사회책임의 시대가 본격화하리라는 데는 대부분 의견을 같이한다. 지구촌 차원에서 “선한 삶의 양식의 구조화”를 합의하고 실행하기로 한 앞서 언급한 ISO26000이 대표적이다. 비록 강제력이 떨어지는 낮은 수준의 규약이라 하여도, 인류문명이 배제와 경쟁이 아닌 포용과 상생의 가치를 천명한 사실은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에 조응하여 지속가능경영이나 사회책임경영 등의 모습으로 특히 “기업사회책임(CS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산업계 시민사회 공공부문 등에서 표출되고 있는 관심은, 상응하는 실천적 움직임과 실질적 성과로 연결되지 않고 않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사회책임 라운드’의 시급성을 인식하여 합당하게 대비하기보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즉 CSR을 마케팅화하거나 본래 취지를 조금씩 흔들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유사의제로 변용하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책임 및 지속가능 의제를 지속가능사회 실현이란 목적에 맞게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실현가능한 방향으로 정책화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월 4일 국회에서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ㆍ대표 김영호)가 출범하였다. 국내 12개 사회책임 관련 시민사회 단체 및 관련 전문가들은 출범식에서 “사회책임 의제의 표류와 변질에 맞서 사회책임 의제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보편적인 실천을 촉구하고자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를 발족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www.ksrn.org)는 출범 취지에 부응하는 활동의 하나로 뉴스토마토와 제휴하여 매주 뉴스토마토 지면에 ‘사회책임’ 섹션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사회책임’ 섹션은 사회책임 의제설정, 관련 소식 전달, 인물과 단체의 발굴 등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사회책임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목적이 있다. 뉴스토마토 독자와 사회 가계각층의 관심과 호응, 참여를 기대한다.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6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출범식에서 ‘지속가능 대학생 기자단(YeSS)’ 편집장 서종민 씨(한양대 영문과 3년, 왼쪽부터), ‘대한민국 지속가능 청소년단(SARKA)’ 리포터 김진영 양(이화외고 3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종오 국장이 함께 출범선언문을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