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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기업들 단견주의 벗어나는 게 사회책임의 첫걸음”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이 주관한 사회책임토크콘서트
입력 : 2015-10-15 오전 6:00:00
사회적 책임은 이론적 토대를 강조하는 것 못지않게 현장을 중심으로 한 실천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금천구청 구로공단노동자생활체험관이 주최하고,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이 주관ㆍ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가 후원한 사회책임토크콘서트는 첫 회부터 현장감이 넘쳤다.
 
지난 8일 서울 금천구 G밸리 기업시민청에서 열린 제1강 ‘왜 사회적 책임인가’의 연사는 안병훈 카이스트 명예교수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연구하고 실천을 강조해 온 안교수의 강연은 명쾌했다. 강연을 들은 청중 대부분이 CSR에 낯선 대학생들이었지만 강연장은 시종일관 열기로 가득 찼다.
 
강연하는 안병훈 교수
◇사회적 책임 경영은 롱-터미즘(Long-Termism)
 
안 교수는 먼저 1976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을 언급하며 운을 떼었다. 프리드먼은 ‘주주자본주의’를 주창한 경제학자였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며 기업의 책임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안 교수는 프리드먼의 이러한 논지가 종종 ‘오용’되는 행태를 지적했다.
 
“비윤리적 경영 행태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그의 글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겁니다.”
 
그는 프리드먼이 합법적ㆍ윤리적 틀 내의 이윤 추구를 말했음을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는 워낙 ‘빨리 빨리’가 체질이라 기업에서도 단기적 성과, 빠른 피드백을 원하지만 이것 또한 잘못된 풍토라고 꼬집었다. 그는 기업에게 멀리 내다보고 ‘그림을 크게 그리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곧바로 ‘롱-터미즘(Long-Termism)의 전도사’ 도미닉 바튼의 주장이 소개됐다.
 
안 교수는 단순하고 명료하게 정리했다.
 
첫째, 기업들은 단견주의(Short-Termism)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에서는 여러 이해가 충돌한다. 때로는 서로 이롭게 하는 윈-윈 전략이 요구되는데, 단견주의는 그것을 방해한다. 둘째, 기업은 이해관계자에 기초한 경영을 해야 한다. 셋째, 그에 걸맞은 기업지배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안 교수는 자신이 수십 년 전부터 주장하고 있는 이 세 가지를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에 필수적인 3대 축’이라 강조했다.
 
“짧게 보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운위할 수 없습니다. 그런 기업에서는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경영진을 이사회가 가만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강압적이고 폐쇄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한 기업에서 ‘상생 경영’과 같은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안 교수는 장기적 관점,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고려, 합당한 지배구조가 있다면 구태여 CSR을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알아서 잘 되기 때문이란다.
 
안 교수는 CSR의 핵심으로 ‘Accountability’를 적시했는데 “마땅한 번역어가 없어 그냥 썼다”며 “이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질적으로 가능케 한다.”고 강조했다. 요지는 기업이 지는 책임의 소재와 규모가 “손에 잡히도록” 투명하게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사회, 기업의 이해관계자 등을 고려해 장기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경영은 일단 옳지만 논의의 진전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Accountability’가 필요하다.
 
안 교수는 존 러기 하버드 대학 교수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보라 했다. 존 러기 교수가 2008년에 발표한 ‘유엔 기업과 인권 프레임워크’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일반 인권 이슈는 거창해서 구체적인 틀을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기업 관련의 인권 문제는 다르다는 것이 러기 교수의 생각이었다. 전 세계를 돌며 많은 포럼을 열고, 언론 홍보, 정부와 논의 등을 거친 끝에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노동자의 인권, 예컨대 노동 환경 문제는 일반적인 환경 문제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기업에 고용된 아동의 공부할 권리는 일반적인 인권 문제보다 더욱 구체적이다. 인권으로 치환하는 방식에 허점이 있을 테지만, 안 교수는 보다 일관적이고 표준화한 평가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초연결사회일수록 CSR 중요
 
안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정의를 보다 정확히 알자고 거듭 강조했다. 2010년에 국제표준화기구(ISO)가 발표한 ISO26000은 CSR의 정의에 새 문구 “‘그들이 초래할 악영향’(Their adverse Impact)을 예상하고 방지하거나 보상하는 것”을 추가했다. 안 교수는 ‘그들’을 강조했다. 사회적 책임은 해당 기업의 행위가 직접 관련된 부분에서 시작된다는 관점이다.
 
현대 사회는 ‘초연결사회’에 진입했다. 사물인터넷(IoT)은 사람과 사물의 경계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셜미디어는 시ㆍ공간을 초월했다.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에서 경영은 ‘살얼음판’에 서 있다”며 안 교수는 최근 폭스바겐 사태를 예를 들며 설명했다. 폭스바겐 사태는 사건의 발각과 전파가 한 순간에 일어났다. 파급의 범위는 전 세계였다. 예컨대 폭스바겐에 신차용 타이어(OE) 천만 개를 공급하는 한국기업 금호타이어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는 폭스바겐사태로 인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새로이 부각되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이와 달리 피해를 주는 자와 피해를 받는 자가 명확한데도 ‘사회적 합의’가 잘 안 되는 분야도 있다고 했다. 안 교수는 외부효과 당사자들이 연관된 분야라고 했다. 그는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를 예로 들었다. 피해를 주는 자, 받는 자가 명확한데도 갈등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은 ‘사회적 합의’가 부재한 탓이다. 이 경우는 권리의 우선순위가 설정될 때 갈등 해결은 한결 수월해진다는 것이 안 교수의 설명이었다.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고 볼 수 있는데, 정부의 규제 범위를 넘는 문제도 많다. 안 교수는 안전 문제, 사이버 범죄, 개인 정보 보호 문제를 예로 들었다. 발생 시점과 전파 속도를 정부가 따라잡기 어려운 문제라고 한다. 이를 두고 “외부효과의 전성시대”라고 표현했다.
 
안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논하는 데 있어서는 ‘외부효과(Externalities)’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며 그 유형 세 가지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기술적 외부효과’이다. 흔히 알려진 외부 효과의 유형이다. 상품의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해, 산업재해, 게임 중독 등이 그 예다. 두 번째는 ‘정보 비대칭성 기반의 외부효과’이다. 그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빗대서 설명했다.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복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정보가 의사에게 쏠린 상태, 즉 비대칭이기 때문이다. 같은 양상을 고용인-피고용인, 경영자-주주 등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협상력 차이 기반의 외부효과’이다. 개인 단위의 고객이 기업에 소비자 권리를 관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와 관련 안 교수는 기업의 자발적 대응, 즉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강조했다. 폭스바겐 사태가 증명하고 있듯이, 기업이 방치한 위험의 폭발은 머잖아서 그 기업은 물론 사회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초연결사회’에서 그 파급 속도와 범위는 전 지구적이다.
 
“자기 책임에 미흡한 대응은 심대한 리스크 요인으로 되돌아오는 시대이며 오늘날은 리스크 관리부터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리스크 관리 등의 ‘책임 이슈’는 사회 공헌의 차원이 아닌 사회책임의 차원이라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사회책임 기업만큼이나 사회책임 노동자, 사회책임 소비자가 중요하다”며 “사회적 감시가 소홀하면 결국 노동자의 권리를 놓치고, 소비자의 권리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지난 8일 서울 금천구 기업시민청에서 금천구 구로공단노동자생활체험관 주최로 열린 사회책임 토크콘서트에 참여한 청중이 안병훈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다.
KSRN 서종민ㆍ표은솔기자, 편집 이동형 집행위원(www.ksrn.org)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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