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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바람)‘다른’ 불편이 존중되는 사회
입력 : 2016-03-07 오전 6:00:00
내가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외국어센터에서는 매 학기 수강신청한 사람들에게 확인 문자를 보낸다. 대강 이런 식이다.
 
‘1/5 중국어강좌 개강. 장소: 국제관 315호’
 
이렇게 개강 여부, 장소, 시간 등을 담은 문자를 한 번에 수백 통씩 보낸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데 번거롭다. 특히 번거로워지는 건 공일공, 공일칠들 때문이다. 엑셀 파일에서 한꺼번에 번호를 복사해서 문자전송시스템에 붙여넣기를 하는데, 공일공ㆍ공일칠로 시작하는 번호가 있으면 꼭 오류가 난다. 그러면 그 번호만 따로 뽑아서 한 번 더 문자를 보낸다.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을 두 번해야 한다. 정말 번거롭다.
 
두 번째 문자를 보내면서 속으로 툴툴거린다.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011, 017을 쓰려는 거지? 이것 때문에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통신사에서도 이거 바꾸느라 매년 수억씩 쓴다던데. 고집들 하고는…’ 전체 수강생 중에 이런 번호를 쓰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010을 쓰고 있는데 이 사람들만 011, 017을 쓰는 이유가 뭘까.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갑자기 띵 하고 머리가 울린다. ‘앗, 혹시?’
 
‘앗, 혹시?’는 평소 경솔하기 짝이 없는 나를 눌러주는 마법의 문구다. 그 시작은 이렇다. 중학교 때 다니던 도서관은 자리배치도를 모니터에 띄우고 색깔로 빈자리를 보여준다. 배치도 상에서 초록색이면 빈자리, 빨간색이면 이미 누가 앉은 자리다. 초록색 자리 중 원하는 자리를 고르면 된다. 같이 간 친구가 그날따라 굼떴다. 자리배치도를 띄워놓고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기에 한 마디 했다. “야, 병신아 뭐하냐?”
 
친구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어 미안, 나 색맹이라 잘 안보여”
 
소름이 쭈뼛 돋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디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아직도 그 친구가 왜 미안하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미안할 사람은 난데. 그런데도 그때는 “미안해”라고 했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다. 사실 그때 나는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민망하고 창피했다. 그래서일까. 그 뒤로는 학교에서 그를 만나면 슬슬 피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다시 도서관에 같이 가는 일은 없었다.
 
미안해서가 아니라 창피해서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그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내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특별했던 그 일이 그에게는 일상이었다.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을 때는 물론이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컴퓨터 게임을 할 때, 빼빼로를 고를 때 등 수십, 수백 가지 경우에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테다. 그때마다 자기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었을 거고, 나도 그 중에 한 명이었을 뿐이다. 온 세상이 나를 불편해 한다면 그런 사람 한 명쯤 늘어나는 건 별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세상은 공일일, 공일칠을 불편해하는 공일공들로 가득 차있다. 내가 속으로 그랬던 것처럼, 공일공들은 공일일, 공일칠들에게 불평을 쏟아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공일일, 공일칠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가피해서, 또는 과거와 결별하기 싫어서 등등 이유는 많다. 다른 게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당연히 공일일, 공일칠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과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많은 공일일, 공일칠들은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는 데 익숙한 것 같다. 어디서든 스스로 공일일, 공일칠임을 밝히고 옹졸한 공일공들의 눈초리를 받아내야 한다면 좀 너무하다. 운좋게 공일공에 포함된 사람으로서, 생각지 않은 말이 튀어나오려 할 때 ‘앗, 혹시?’가 필요한 이유다.
 
조응형 고려대 철학과 4년(www.baram.news)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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