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에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상징되는 반세계화를 표방해온 바 있어 국제 사회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 최대 업적으로 꼽은 파리 기후변화협정 역시 폐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는 그동안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미국사업을 방해하려는 중국의 사기극”이라고 주장해왔다. 파리협약이 미국의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외국이 우리(미국)가 사용하는 에너지양에 간섭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시장조사기관 ‘럭스 리서치’는 이번 대선에 나온 두 후보의 연임을 가정했을 때 트럼프 8년의 임기 동안 힐러리 클린턴 정부 기간에 비해 미국의 온실가스 방출량이 16%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지구의 기후변화를 앞당길 뿐 아니라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다른 국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문제적이다. 국제적인 견제와 협조 아래 순항을 달리던 파리기후변화협정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전망이다.
마라케시 당사국총회, NDC 조정이 핵심
지난 7~18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22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2)에도 ‘트럼프 위협’(Trump Threat)이 감돌았다. 세골렌 루아얄 유엔 기후변화회의 의장은 트럼프의 당선과 관련하여 쏟아지는 질문에 "그의 주장처럼 협정이 폐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제22차 당사국총회(COP22)에서는 파리협약(The Paris Agreement) 실효를 강화하기 위해 각국이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한다. 이번 당사국 총회에는 196개 당사국이 참석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수석대표인 조경규 환경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부처 공무원과 전문가로 구성된 대표단이 참석했다.
가장 큰 쟁점은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각국이 제출한 NDC(국가별 기여 방안)의 양과 범위에 대한 조정일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UNFCCC(UN 기후변화협약)는 파리협약 당시 각국이 제출한 NDC 총량을 기준으로 지구가 2030년까지 2.7~3.7℃ 상승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2℃ 이하 억제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각국이 NDC를 재조정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이해관계가 달라 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개도국은 재정, 기술, 지원 등의 이행수단을 중시하고 자국의 국가능력을 반영해 달라고 호소하는 반면, 선진국은 탄소 배출량 감축에 예외가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환경 재앙을 대비하기 위한 신(新)기후체제
주지하듯 제22차 당사국총회(COP22)는 파리협약의 실효를 강화하기 위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지난 11월 4일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의 파리협약이 발효됐기 때문이다. 협약은 55개국 이상이 비준하고, 비준한 국가의 NDC가 전 세계 NDC 총량의 55%를 넘으면 공식 발효된다. 지난해 12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협약이 채택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다. 기후변화협약(UNFCCC)이 합의에서 발효까지 2년. 교토의정서가 8년이 걸린 것을 고려할 때 이례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세계가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높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한편, 신기후체제에서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G2와 EU가 개발도상국 전체를 강제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파리협약은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신기후체제(Post-2020)로, 교토체제에서는 37개 선진국만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졌으나 신기후체제에서는 196개의 선진·개발도상국 모두가 감축의무를 진다.
파리협약의 목표는 지구온난화의 진행을 억제하는 것이다. 현재 육지의 3분의 1에서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세계 각지에서 홍수·가뭄 등 재난이 급증하고 질병이 확산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지난 112년 사이(1901∼2012년) 지구의 평균기온이 0.89℃ 상승하였으며 해수면은 18~59cm 상승하였다. 극지방 얼음이 모두 녹으면 해수면이 지금보다 1m 상승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해수면이 1m 이상 높아지면 도쿄, 싱가포르가 사라지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환경적 재앙을 타개하고자 기후변화당사국이 모여 논의를 시작하였고 파리총회(COP21)에서 지금의 파리협약에 합의한 것이다.
파리협약은 2020년 이후 지구의 평균 온도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하며, 2050년까지 2010년 대비 최대 95%까지 탄소 배출을 감축함으로써 탄소배출량과 흡수량의 균형(탄소제로)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각국은 NDC를 정하여 매 5년마다 제출하되 이전에 제출한 NDC보다 감축량이 상향되어야 한다. 더불어 각국은 2020년까지 2050년까지의 저탄소개발전략을 제출해야 한다.
파리협약은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 탄소를 감축하면서 탄소배출권을 글로벌화하는 것 외에도 산림의 전용(轉用) 및 황폐화를 방지하여 산림의 지속가능 사용을 명시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통한 탄소감축과 별개로 탄소 흡수원이자 저장고인 산림의 지속을 중시한다는 의미이다. 향후 산림은 각국이 탄소감축량 목표달성을 돕고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써 활용 가능한 주요한 영역이 될 전망이다. 파리협약을 통해 각국 정부와 민간의 참여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절차가 복잡하고 사업기간이 길어 아직은 사업을 완수한 사례가 없다.
파리협약의 가능성, 그리고 에너지의 패권의 재편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남아있던 화석연료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에너지 인식에 대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산이 필요하고 생산을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가 요구된다. 예를 들어, 가솔린과 디젤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전기로 움직인다면 엔진을 만드는 수많은 협력 산업이 도태되고 새로운 산업군으로 변환될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를 주도하는 나라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새로운 에너지는 당연히 저탄소 또는 탄소제로 에너지이다.
배출권거래 역시 중요하다. 교토의정서에서는 오염을 배출할 권리를 사고파는 탄소배출권과 그 거래 시스템(ETS : 탄소배출권거래제도)을 만들었다. 현재 38개의 국가와 지역에서 운영 중이다. 신기후체제에서는 배출권거래제가 120개 이상의 국가에 확장되어 적용될 예정이다. 배출권거래제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무역에서 탄소 이력을 추적하여 이익?불이익을 부여 수 있고, 탄소금융상품을 만들어 금융시장 재편까지도 꾀할 수도 있다.
급변하는 기후체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11월 3일, 파리협약 국내 비준 절차를 완료하고 유엔에 비준서를 기탁했다. 비준안이 한참동안 국회에서 계류되다 발효 바로 전날인 11월 3일에서야 비준된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총괄하는 국무조정실은 되레 담당 인원을 줄여, 국무조정실이 부처 간 갈등을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2014년 초에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은 2020년까지 BAU(배출전망치) 대비 감축률을 ‘수송부문 34.3%, 발전전환부문 26.7%, 공공부문 25.0%, 산업부문18.5%’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발표한 감축방안은 2030년까지 BAU 대비 감축률을 ‘수송부문은 24.6%, 발전전환부문은 7%, 폐기물·농축산·공공부문에서는 23%, 산업부문 12%’를 초과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하였다. 즉 전 부문에서 탄소감축을 완화한 것이다. 국내 탄소배출의 45.3%는 발전전환부문에서, 30%는 산업부문에서 배출된다. 그럼에도 정부가 산업부문에 대한 감축률을 12% 이하로 완화한다고 특정한 것은 그만큼 산업부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가능하다. 정부는 어느 기업이 얼마만큼의 탄소를 줄여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도 비공개로 하고 있다.
37% 감축 이행 목표 자체에 대한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는 ‘100년간 누적 탄소배출량’ 세계 16위이다. 증가율은 세계 7위, OECD 국가 중에선 1위(2014기준)다. 정부가 제출한 NDC 목표에 따라 2030년까지 탄소감축 목표량은 BAU 8억5000만톤CO2e 의 37%인 3억1450억톤CO2e이다. 이중 11.3%(9600만톤CO2e)는 다른 나라의 감축분을 사들이는 편법이므로 실제로는 25.7%(2억1800억톤CO2e) 감축에 불과하다. 결국 2030년에 국내에서 6억3200억톤CO2e를 배출하겠다는 것인데, 2014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이 밝힌 2020년의 국가 목표배출량(5억4300만톤CO2e)과 비교할 때 2020년 이후 10년 동안 국내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는커녕 14% 늘리겠다는 ‘기이한’ 목표다.
우리나라는 탄소배출 감축이 당장의 성장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기후변화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안주의 소극적 대응은 국가경쟁력을 점진적으로 갉아먹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장기적인 지속발전을 위해선 지금까지의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으로 패러다임 전반의 전환을 시급히 모색해야 할 때이다.
2015년 11월30일부터 12월12일까지 열린 파리기후변화총회(COP21) 회의장. 전 세계 196개국 정상들이 참여했다. 사진/KSRN
송은하 KSRN기자
편집 KSRN기획위원회(www.ksr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