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있었던 주요 국내외 선거결과의 특징은 사전 예측이 빗나갔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지난 4월 우리나라 국회의원 총선에 이어 6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지난 9일 미국 대통령 선거까지 민심의 결정은 사전조사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선거 직전까지 ‘대세’가 형성돼 있었고, 일반 국민은 물론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이 대세의 실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믿음은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산산이 부서졌다. 유권자들은 사전 조사가 언제 있었냐는 듯이 행동했다.
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나간 이유를 여러 군데서 찾을 수 있겠지만
, 사전 조사에서 국민들이 본심을 털어놓지 않았던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 선거 국면에서
‘대세
’는 이미 나와 있고
, 이를 거스르는 응답을 하기가 내심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 대세가 결정돼 있다고는 해도
, 마음 속으로는 이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기에 이를 뒤집을 수 있는 명분을 찾고 있었을 수도 있다
. 소셜 미디어 시대를 맞아 온라인 민심을 접하기는 어느 때보다 용이해졌지만
, 선거장으로 직접 움직이는 오프라인 민심은 오히려 파악하기 어려워진 지도 모른다
.
지난 9월30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대통령 지지도는 30%였다. 11월3일에는 이 숫자가 5%로 내려오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불과 한달여 만이다. 한때 ‘대통령이 왔다 간 곳’이라고 자랑했던 전국 관광지와 시장들은 이제 대통령의 방문 사진을 치우기 바쁘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는 100만 촛불이 거리를 메웠고 이번 주말도 범국민 집회가 예정돼 있다. 거리로 나선 국민들은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면서 집회의 도덕성과 정당성을 증명해 냈다.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패닉에 빠진 여당은 극도의 혼란 속에서 각자도생에 나설 분위기다.
대통령이 물러나기를 바라는 국민의 여론은 ‘대세’다.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지금, 퇴진 이외에는 해답이 없어 보인다. 야권에서 가장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도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조건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은 스스로 자리를 떠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대통령이 정국 안정을 위한 후속조치 방안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고심하고 있다"면서 하야나 퇴진 가능성을 사실상 일축했다. 장기전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청와대로서는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현 상황을 수습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지지자를 재결집시키고 지지도를 끌어올려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다. 5%에 포함되지는 않더라도 대통령을 지지할 명분을 원하는 계층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노인 폄하’ 발언이 선거판의 분위기를 일순간에 뒤집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탄핵정국으로 들어가 탄핵을 부결시키고 퇴진의 동력을 무력화하는 것도 또다른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지난 한달이 질풍노도의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시간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머리를 맞대 정교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당위성과 구호만 앞세워 내부 갈등으로 골든타임을 허비한다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대세’에 고무받고 안주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손정협 증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