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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새로운 세계 무역체제 ‘사회책임 라운드’가 온다
17일 국회서 한국사회책임정책연구협동조합 발족·기념 세미나 열려
입력 : 2016-11-21 오전 8:00:00
전 세계적으로 사회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국제표준화기구(ISO) 이사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세계적 표준인 ISO26000을 자율지침에서 경영인증으로 변경키로 확정했으며, 유럽연합(EU)은 역내 500인 이상 기업의 사회보고를 2017년부터 의무화한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은 ‘사회책임(SR) 라운드’의 도래를 의미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중심에 둔 사회책임과 다자간 무역협정 틀을 의미하는 ‘라운드’를 합한 ‘사회책임 라운드’는 아직까지 학문적·시사적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으나, “사회책임을 주제로 한 무역협정 틀”로 정의할 수 있다고 안치용 가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말했다.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사회책임정책연구협동조합 및 지속가능기업학회(준비위) 발족식’에 이어진 기념세미나에서 안 교수는 “‘우루과이 라운드’처럼 명시적인 다자간 무역협정은 아니지만 탄소배출권이나 사회보고 등 사회책임 이행이 수출과 수입을 제약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일종의 ‘라운드’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 2의 우루과이 라운드”로 불리는 ‘그린 라운드’에 이어 ‘사회책임 라운드’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사회책임라운드 도래 징후
유럽연합(EU)이 역내 500인 이상 기업의 사회보고를 의무화한 것과 국제표준화기구(ISO)가 ISO26000을 자율지침에서 인증으로 변경키로 확정한 것은 사회책임 라운드의 도래 징후로 볼 수 있다.
2014년 4월 15일 유럽연합(EU) 의회에서 대기업의 환경, 인권, 반부패 등에 관한 '비재무 정보공개'를 의무화한 법안이 압도적 지지로 통과되었다. 유럽에서 기업의 비재무 활동을 '지속가능 보고서' 등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법적인 의무가 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 법안은 기업 공시 관행에 완전히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럽 재계의 강력한 반발을 뚫고 통과된 이 법안은 회계에 관한 기존 법률을 일부 개정한 것으로, 종업원 500인 이상 기업에게 ESG를 뼈대로 한 비재무(non-financial) 및 다양성(Diversity)에 관한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Disclosure)하도록 하였다.
 
대상기업은 종업원 수가 500인이 넘는 상장·비상장 기업뿐만 아니라 은행, 보험과 같은 금융회사도 포함한다. 비재무 정보 공시 의무는 EU에 가입한 모든 회원국의 기업에 예외 없이 적용된다. 비재무 정보 공개는 기업의 연차보고서를 활용하도록 하였으며 환경, 사회, 종업원에 관한 내용에서 인권, 반부패, 뇌물 등에 관한 내용까지 기술하도록 하였다. 연차보고서에는 비재무 성과와 관련하여 기업이 도입한 정책과 그 결과, 비재무적 위험과 이 위험에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적시하도록 하였다. 다양성과 관련해서는 연령, 성, 지역, 교육 및 직업적 배경 등을 포괄하도록 규정하였다.
 
보고형식과 관련하여 EU는 통합보고(IR : Integrated Reporting) 형식을 취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2009년 남아공에서 처음 도입한 기업의 통합보고는 전통적인 재무정보 중심의 보고(Financial Reporting)에서 벗어나, 장기적 가치창출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중요한 재무·비재무적 요인을 통합하여 보고하는 방식이다. EU가 통합보고를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연차보고란 형식을 취하게 함으로써 비용과 편리성 등을 감안할 때 사실상 통합보고가 대세를 이룰 전망이다.
 
또한 EU는 보고는 의무이나 보고하지 않을 때는 설명하도록 하는 ‘원칙준수 예외설명’(Comply or Explain)을 적용해, 사실상 유럽 기업들은 이제 재무·비재무의 두 종류의 보고서를 발간하게 됐다. EU는 보고의 편의를 고려하여 그룹에 소속된 기업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이 따로 비재무 정보를 공시하는 대신 그룹 차원에서 전체적으로 공시하는 것을 권장했다. 변경된 공시제도는 2017 회계연도부터 적용된다. 내년부터 유럽 기업의 공시제도가 전면 개편되는 것이다.
 
한편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이사회는 인증제를 채택한 기존의 ISO 제도와 달리 자율준수(guidance) 방침을 고수하던 ISO26000을 경영인증으로 변경하기로 확정했다. 2010년 11월 정식 출범한 ISO26000은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개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세계적인 표준이다. 사회책임 이행은 법이나 제도로 강제하기보다 기업 자율로 추진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취지에 따라 자율준수 방침을 고수한 것이지만, 선도적인 일부 기업들의 내용상 인증화에 준하는 관행에 따라 결국 ISO26000이 기업들에 수출 등에서 일종의 자격요건으로 되어가는 중이다. 현재는 ISO26000이 경영인증화할 경우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사회책임라운드가 무역장벽이 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에게 ‘사회책임 라운드’는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의 사회책임경영이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간행된 ‘국내 상장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 현황 및 분석’(안상아)에 따르면 전체 1601개 상장기업 가운데 ESG 정보가 담긴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 은 77개사에 불과하고, 한국거래소가 공시규정을 통해 녹색경영정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관련사항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는 자율공시 사항으로 의무는 아니다. 이는 기업 생태계와 기업경영 인식에 변화를 초래할만한 구체적인 법규가 부재함에 따라, ISO26000 준수를 통한 책임경영의 내용 체계화나 사회보고를 통한 책임경영의 성과 집대성이 성실히 이행되지 않는 상황임을 의미한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대부분 매년 ‘지속가능보고서’ 또는 ‘지속보고서’를 통해 비재무 정보를 공시하고 있다. 2003년부터 비재무 정보 공시, 또는 다른 표현으론 사회보고(Social Reporting)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사회보고서 명칭에서 그동안 ‘사회책임’이란 용어 사용을 극단적으로 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고서의 명칭뿐만 아니라 보고서의 내용이나 질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즉 한국 기업들이 내는 지속가능보고서가 국제관행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비재무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의 10년치 비재무 정보 공시 상황을 분석하여 그 수준을 평가한 안치용 교수는 “한국 기업의 사회보고는 꼭 필요한 정보를 누락시키는가 하면 자사에게 불리한 정보는 아예 싣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에 근거한 감사보고서와 달리 한국 기업들의 사회보고서는 정보를 조금 더 넣은 기업홍보물에 머문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국내 기업들이 ‘사회책임’을 회피하거나 소홀히 하는 이유로 국내 기업의 오너 중심 체제를 꼽기도 한다. 이와 같은 오너 중심 경제체제는 기업을 사회적 존재로 보고 종업원·소비자·투자자·시민단체·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중심으로 경영해야 한다고 보는 ISO26000의 기본 철학과도 배치된다. 때문에 기업을 총수 일가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재벌체제에서는 사회책임경영이 쉽지 않다. 오너 중심 체제에 따라 발생한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이나 효성의 부자간 갈등과 같은 오너리스크 사례들을 사회보고에 어떻게 기술할지 생각하면, 기존의 재벌기업의 관행을 감안할 때 전혀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오너리스크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이나 삼성전자의 반도체 작업장 유해물질 노출로 인한 사상자 발생, 현대차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차별은 인권, 노동, 환경 등의 핵심 주제를 포함하는 ISO26000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해당 기업들이 EU에 사회보고를 할 경우, 위와 같은 문제들에 납득할 만한 해명을 제시해야 한다. 사실상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 해명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기업들은 관련된 비재무 정보를 고의로 누락하는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공기업은 재벌기업에 비해 나은 형편이지만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정부로부터 부당한 간섭에 시달리는 한국의 공기업 또한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를 안고 있으며 비정규직 문제와 부패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비재무 영역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는 ‘성과’를 내지 않는다면 한국 기업들에게 남은 선택은 사회보고의 회피 또는 분식, 정상적인 사회보고를 통한 비재무적 리스크의 공개가 있다. 어느 것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유럽 수출 한국기업은 현실적으로 유럽 기업에 준하는 비재무정보 공시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500명 이상 고용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EU의 사회보고 지침은 유럽 지역의 약 6000개 기업을 포함해 유럽에 진출한 우리 기업 중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회원국 내 대규모 생산공장을 보유한 기업도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지침은 유럽 기업과 거래하는 다른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 된다.
 
또한 금융위기 이후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보호무역 분위기 속에서 ISO26000이 경영인증이 될 경우 실질적인 무역장벽이 될 전망이다. 특히 유럽과 미국 수출기업, 국제 공급망관리에 포함된 기업,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본원적으로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업, 사회책임투자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기업, 치열한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는 기업 등은 ISO26000의 인증이 필수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범(汎) 사회책임 라운드’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 파리체제의 도래 역시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국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37%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또한 탄소배출권의 10% 정도를 외국에서 사오겠다는 것이 정부 로드맵이다. 탄소배출권의 가격이 많이 하락했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기에 비용 측면에서 또 다른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게 된다. 명시적이고 경제적인 ‘하드 무역장벽’뿐만 아니라 사회책임과 환경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 무역장벽’에 대비한 국가차원의 전략 수립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날 ‘사회책임 라운드의 도래와 기업의 생존전략’이란 주제로 발표를 한 안 교수는 “하드 무역장벽에 대한 준비는 많이 이뤄지는 반면 소프트 무역장벽에 대한 준비는 별로 없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책임에 관하여 국가차원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로, 불확실성을 키우는 정책들은 사회적 토론을 통해 세부적인 조정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기업들은 시급히 ISO26000에 맞춰 책임경영체계와 사회보고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책임에 관한 기업, 정부, 시민사회, 언론, 학계 등 사회 여러 당사자가 포함되는 ‘사회책임 국가전략 수립을 위한 원탁회의’같은 논의체를 발족하여 가동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지속가능기업학회(준비위) 및 한국사회책임정책연구협동조합 출범식 겸 기념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사진/중견기업연구원
박예람 KSRN기자
편집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회(www.ksrn.org)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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