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칼럼을 통해서 기업 윤리경영의 최종 파수꾼이 되어야 할 CSR부서와 임원이 오히려 정권과의 부패 스캔들에 어떻게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는지 살펴보았다. 그 근저에는 한국 경영계 전반과 개별 기업들의 잘못된 CSR인식이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이런 기업들의 잘못된 CSR인식과 관행은 단순히 네거티브 스캔들과 같은 우연적인 사건을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기업에게만 모든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즉 CSR산업 전체의 비윤리적. 비상식적 구조의 형성과 유지에 소위 전문가와 그룹이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고백할 시기가 되었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필자는 선언한다.
우선 기업들의 CSR보고서(사회책임보고서 혹은 지속가능영역보고서) 컨설팅 산업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CSR보고서의 기술 항목과 내용은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의 기준에 따라서 성실히 기술되어야 하고, 기술된 내용은 독립적인 제3자에의 의해서 검증받아야 한다. 그런데, 개별 기업들의 CSR보고서 프로젝트 발주 공고에 큰 문제가 있다. 특히 상당수 공공기관들의 관련 프로젝트 공고문을 보면 턴키방식 (일괄수주계약 방식)일색이다. 즉 어떤 기관 (기업)이 그 프로젝트를 수주하던, 해당 수주기관은 보고서 작성 컨설팅, 검증, 디자인 및 인쇄까지 모두 책임지는 구조이다. 솔직히 말이 컨설팅이지 계약을 따낸 기관의 컨설턴트가 기업을 대신하여 기업 CSR보고서를 작성해주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자신이 쓴 내용을 검증할 기관을 자신이 선정하도록 하는 이 기괴한 일괄수주계약이 말이 되는 것인가?
컨설팅 기관의 반(反) CSR적인 경영형태도 큰 문제이다. 몇 몇 컨설팅기관은 기업에 대한 CSR 평가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자신들의 평가 대상인 기업에게, 별도의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고 평가 방법론을 활용하여 점수를 잘 받게 해주기 위해 다시 컨설팅을 해준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이해관계의 상충문제이자 비윤리적인 컨설팅이다. 또한 컨설턴트도 직접 고용하는 대신 거의 무슨 무슨 위원이라는 직책의 위촉직이 대부분이다. 즉 컨설팅 회사가 계약을 체결해오면 해당 컨설턴트와 컨설팅회사가 나눠먹는 구조인 것이다. 자신들의 고객(기업)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 임직원의 안정적 고용, 인권 존중 등을 권유하는 CSR컨설팅을 하면서, 실상 자신들은 대량의 위촉직 프리랜서를 양산하고, 자신들은 에이전트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수수료로 배를 불리는 형태이다.
한국 기업의 CSR을 촉진하기 위해서 국민연금이 진행하고 있는 사회책임투자(SRI)의 방식 또한 문제이다. 대외적으로는 사회책임투자를 점차 확대할 것이라는 대대적인 홍보작업을 하면서, 실제로 자신들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의 비윤리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의결권조차 행사하지 않거나 이번의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 건처럼 자신들 스스로 불법적인 결정을 저지르고 있다.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방식 또한 문제가 많다. 말로는 사회책임투자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산운용사에 위탁을 주고 단기적으로 계속 각 자산운용사의 수익률을 체크하면서 압박을 하고 있다. 일정정도가 지나서도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자산운용사의 위탁금은 회수하여 수익률이 높은 자산운용사에게 몰아주는 이런 수익추구형 단기투자가 무슨 사회책임투자란 말인가?
기존의 CSR 및 사회책임투자 전문기관과 그룹들은 현재의 비정상적인 산업구조를 인정하고 자신들도 공범의 역할을 해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 한국의 올바른 CSR 및 SRI를 위해서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촛불이 필요하다.
박주원 CSR서울이니셔티브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