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 모두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의 디지털금융도 ‘이심전심’을 기반으로 한다. 범람하는 정보의 호수 속에서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금융서비스를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신한은행은 올 한해를 디지털 영업의 원년으로 삼고, ‘생각의 틀’을 깨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선봉에 선 서춘석 신한은행 디지털그룹 부행장은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디지털금융은 고객이 고민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금융이 일률적인 상품을 판매하는 데 그쳤다면 앞으로는 고객별 상황과 니즈에 맞춰 각기 다른 상품을 제안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춘석 신한은행 디지털그룹 부행장은 디지털 금융의 발전을 위해 '생각의 틀'을 깨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진/신한은행
◆ 디지털뱅킹, 보조 채널 아닌 주 채널…“고객 고민 덜어줘야”
1979년 조흥은행에 입행하며 금융권에 첫발을 디딘 서춘석 부행장은 누구보다 ‘디지털금융’을 가까이 한 뱅커(banker)다.
전산정보부 차장을 시작으로 IT기획부장, IT개발본부장, CISO(최고정보보호책임자·Chief Information Security Officer)를 거쳐 ICT그룹 부행장보까지 역임하며 신한은행의 디지털 전략과 정보기술 부문에서의 혁신을 도맡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서 부행장의 눈에 은행의 ‘디지털화(化)’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비친다.
서 부행장은 “그동안 오프라인 영업의 보조 채널 수단으로 여겨져 왔던 모바일 등 디지털 채널이 이제는 주 영업채널이 되고 있다”며 “아직까지 금액적인 측면에서는 오프라인 영업점의 단위가 크지만 앞으로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휴대폰을 가진 모든 사람이 고객”이라고 꼽으며 “비대면 환경에서는 고객의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프라인 영업점과 달리 고객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많은 만큼, 의사결정의 고민을 덜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서 부행장은 “4차 산업 혁명시대를 맞으며 금융권에서도 '개인화'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면서 “말하지 않아도 고객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안내하고 유도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이뤄지느냐가 금융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지금까지는 좋은 상품을 만들어 고객을 끌어모았다면, 앞으로는 적합한 사람에게 추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통적인 금융의 틀에서 벗어나 상품과 서비스는 물론 일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을 재정의(Redefine)하고 다양하게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첫 단추가 ‘신한 쏠(SoL)’이다.
약 1년간의 실험을 통해 탄생한 ‘쏠’은 신한S뱅크와 써니뱅크 등 기존 6개 앱(응용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있던 금융거래를 하나로 묶은 모바일 통합플랫폼으로, 고객의 모든 금융활동을 알아서 해결하는 솔루션(Solution)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담고 있다. 고객은 AI챗봇 ‘쏠메이트’를 통해 뱅킹과 상담업무를 동시에 볼 수 있으며 맞춤 메뉴 서비스와 해시태그를 통한 거래내역 조회, AR·VR 기반 금융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성과도 가시적이다. 지난달 22일 오픈한 쏠의 총이용고객 수는 380만 명(16일 기준)으로 신규고객은 6만여 명에 달한다. 서 부행장은 “전환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며 “오프라인 영업점에서 신규 고객을 유치할 때 소요되는 노력이나 시간에 비해 고객 유입이 더 많다”고 분석했다.
그는 다만 “이제 첫 걸음을 뗀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정교하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토록 해야 한다”며 “생활금융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쏠 2.0’이라는 개념보다 IT부서 등과 애자일(Agile)한 방식으로 필요한 부분을 수시로 개선하고 조정해나갈 것”이라면서 “‘쏠’ 안에서 부동산이나 쇼핑, 여행정보 등을 제공하는 등 좋은 콘텐츠를 가진 업체와의 상생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귀띔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신한은행 '리뉴업(Re New UP) 2018 디지털 컨퍼런스'에서 위성호 신한은행장(사진 가운데)와 신한 쏠 DNA(Digital Network Alliance) 파트너사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신한은행
◆ 100년 은행 틀 깨려 타업종과 합종연횡…“스마트폰 가진 사람이 모두 고객”
새로운 금융서비스에 대한 연구 개발도 디지털그룹의 중점 과제다.
현재 신한은행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해외기업 송금서비스 '비자B2B 커넥트'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글로벌 블록체인 컨소시엄인 R3CEV와 SBI홀딩스의 블록체인 플랫폼인 ‘SBI리플아시아’에도 가입해 국제 자금 이체 시스템을 검증하고 있다.
서 부행장은 “구체적인 도입 시기를 명시하긴 어렵지만, 해외 송금 등 실제 금융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개발하고 역량을 축적하는 단계에 있다”며 “새로운 기술에 대한 테스트를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메커니즘을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 블록체인 모두 초기 단계”라며 “자체적으로 아키텍처(Architecture)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도록 내부 역량도 강화하고자 한다”고 부연했다.
이에 발맞춰 내부 조직도 정비됐다.
서 부행장은 “지난해 신설된 디지털그룹 안에는 디지털 사업전략을 총괄하는 디지털전략본부와 모바일 채널 통합플랫폼 구축을 담당하는 디지털 채널본부, 빅 데이터 센터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블록체인, 핀테크 등 별도의 랩(Lab) 조직도 마련돼 있다”면서 “금융지주 차원에서 만든 혁신연구소 ‘디지털캠퍼스’와도 유기적으로 협업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거래금액이나 단순히 실적을 늘리는 것 이외에도 내부적으로 직원의 업무 방식과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며 “내·외부의 효율화를 통해 고객에게 더 유용하고 편리한 서비스 제공하는 동시에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싶다”고 언급했다.
실제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옆 부영빌딩에 별도로 마련된 디지털그룹은 보수적인 은행 분위기와 달랐다. 임직원들은 자율복장으로 출근하고 있었으며, 직급도 선임과 수석, 부장까지 3단계로 분류됐다. 서 부행장은 “명칭이나 복장에서도 틀을 깨려고 하고 있다”며 “프로젝트팀 개념인 랩의 경우 역량만 된다면 직급에 상관없이 랩장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쏠의 ‘선물하기 적금’도 이 같은 시도 중 하나다.
서 부행장은 “은행 상품을 타인에게 선물한다는 개념 또한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내부의 틀을 깨는 시도 중 하나”라며 “금융회사라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통신사나 쿠팡, 배달의 민족 등과 같은 타 업종의 마케팅과 서비스 생산과정도 눈여겨보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제휴하고 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100여 년의 은행 역사 동안 만들어온 습관이 있어 기존의 사고방식을 벗어나는 게 쉽지 않지만, 비금융권에서의 업무 방식을 차용하고 이를 응용·개발하는 시도는 계속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고객에게 더 편리한 디지털 체계를 잡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