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스위스 승강기업체 쉰들러그룹과 파생금융상품 손실을 둘러싸고 벌인 소송에서 패소했다. 항소심은 1심을 뒤집고 현 회장 등의 일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쉰들러그룹은 현대그룹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다.
서울고법 민사14부(재판장 남양우)는 26일 쉰들러가 현 회장 등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 4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지급하라"며 "한상호 전 엘리베이터 대표는 현 회장과 공동해 1700억원 중 190억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챔버라운지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소송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주요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함으로써 현대엘리베이터에 7000억원 가까운 손해를 입혔다는 쉰들러의 문제제기에서 시작됐다. 해당 파생금융상품은 현대상선 주가 추이에 따라 주가가 오르면 이익을 나눠 갖고, 주가가 떨어지면 회사 측이 손해를 보는 구조다.
파생상품 계약 체결 후 현재상선의 주가가 떨어지면서 현대엘리베이터는 거액의 손실을 봤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의 부실을 알고도 현 회장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파생계약을 맺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쉰들러 측은 2014년 현대엘리베이터 감사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을 요청했지만 감사위원회가 답변하지 않자 7180억원 규모의 주주 대표소송을 냈다. 이후 각종 이자비용이 붙어 배상액은 7500억원까지 늘어났다. 주주 대표소송은 회사의 이사가 정관이나 임무를 위반해 회사에 손실을 초래한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다.
1심 소송을 맡은 수원지법 여주지원은 2016년 8월 파생상품계약이 핵심 계열사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의견을 받아들여 소송을 기각했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결을 일부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현 회장의 경영권 유지가 목적이었다는 쉰들러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