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 명절 연휴에는 때아닌 IT 이슈가 화두였습니다. 바로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이야기입니다. 이름조차 생경한 이 회사가 급작스럽게 떠오른 이유는 바로 동명의 AI 모델 ‘딥시크’ 때문인데요. 챗GPT에 못지않은 AI 모델을 중국 기업이 개발했다는 소식에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의 빅테크 기업의 주가가 곤두박질쳤습니다.
딥시크 (사진=뉴시스)
단순 중국의 AI 모델 출시가 ‘쇼크’로까지 파장이 컸던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그중 가장 핵심은 저비용·고성능이란 점입니다. 딥시크의 AI 모델이 챗GPT와 비슷한 성능을 보이면서도 개발에 투입된 비용은 557만6000달러(약 78억80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는 오픈AI가 최신 챗GPT에 투자한 비용 1억 달러(약 1438억원)의 20분의 1 수준입니다.
또한 딥시크는 미국의 대중 제재로 인해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가속기인 H100 대신 성능을 다운그레이드시킨 H800을 학습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첨단 AI 칩을 판매하며 ‘제왕’으로 군림해 온 엔비디아의 왕국에 균열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동안 AI 모델 개발에는 최첨단 AI 칩이 필수로 여겨졌는데, 그 공식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저성능칩으로 고효율을 낸 딥시크의 등장에 엔비디아 주가는 27일(현지시간) 17% 폭락하는 등 시총이 하루새 5890억달러(약 846조원)나 증발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반도체 업계도 여파가 예상됩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사실상 독점 납품하며 급성장해 왔고, 삼성전자도 HBM 5세대 납품을 위해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엔비디아 매출 타격의 영향은 고스란히 국내 반도체 업계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AI 산업 관련 대중국 수출 규제 강화 움직임도 먹구름으로 드리우고 있는데요. 트럼프 정부가 엔비디아에 저사양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면 역시나 국내 반도체 업계의 매출 하락도 불가피한데요. AI 패권을 둘러싼 미중 싸움에 국내 반도체 기업의 등만 터지는 형국입니다.
‘딥시크’ 쇼크는 비단 국내 반도체 업계 여파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물론 딥시크 측의 주장과 모델 성능에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 많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앞서 지난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 열풍을 ‘골드러시’에 비유하면서 “금을 캐기 위해서는 청바지와 곡괭이 등 필요한 도구가 많은데, 골드러시가 생기고 금을 캐서 돈을 벌겠다는 사람보다 청바지와 곡괭이를 파는 사람이 먼저 떴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즉, AI라는 금을 캐기 위한 도구인 반도체 칩 등 그래픽처리장치(GPU)의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하지만 딥시크의 등장은 이같은 AI 골드러시의 변화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게 됐는데요. 그간 엔비디아의 검증된 ‘비싼 곡괭이’를 사용해야만 했다면, 이제는 딥시크 등 ‘값싼 곡괭이’로도 금을 캘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임지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딥시크의 비용 효율적 접근 방식이 AI 개발에 필요한 컴퓨팅 파워와 비용에 대한 재평가를 촉발했다”며 “AI 타임라인이 가속화되고 중소 후발주자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줘 추가 수요를 더 창출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라고 짚었습니다.
이에 청바지와 곡괭이가 아닌 실제 금을 캐내는 역군, 즉 AI로 노동력을 대체하고 부를 창출할 서비스로 AI 산업의 무게추가 옮겨갈 공산이 커졌는데요. 이러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이 다음 AI 시대 왕좌를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 같은 차세대 AI 서비스 경쟁에서도 우리나라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은데요. 이미 엄청난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에 비해 규모의 차이로 경쟁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간 기업을 뒷받침 할 정부의 지원도 아쉬운 상황인데요. 정부의 집중 투자로 글로벌 AI 기업으로 성장한 프랑스의 ‘미스트랄’ 사례처럼 AI 골드러시 변화에 뒤져지지 않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책이 절실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