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지만 밥을 버는 일은 어렵습니다. 다른 일은 10년 넘으면 눈 감고도 할 수 있는데 글쓰기는 늘 힘들다고 했던 박완서 선생의 말처럼, 기사쓰는 일은 좀처럼 늘지 않습니다. 실력보다 스트레스 쌓이는 일상입니다.
기자가 '사랑'이라고 이름 붙인 길고양이. (사진=오세은 기자)
스트레스를 덜기 위해 뛰어도 보고, 친구들과 맛집도 가고 영화도 봤지만, 속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뭔가 얹힌 듯 답답했습니다. 절친이 이런 제게 애완견 카페를 가보라고 하더군요. 동물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면서요.
살면서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을 키워본 적 없어 그 말이 잘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믿어야 본전이니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대상은 고양이로 정했습니다. 어릴 적 뒤꿈치를 강아지에게 물린 적이 있는 탓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길냥이들에게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집 근처를 배회하던 호랑이 무늬 길냥이를 눈여겨 봤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그 길에 출몰하던 녀석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느닷없이 녀석의 꼬리나 얼굴을 마구 만져도 도망가기는커녕 ‘야옹’거리며 좋아했습니다. 무던한 성격인 듯 싶어 슬그머니 다가갔습니다.
어렵게 손을 내밀어 만졌는데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츄르(고양이 간식)를 챙겼습니다. 냉큼 잘도 받아먹었습니다. 츄르를 다 먹고 저를 쳐다보는 녀석의 얼굴과 등을 여러 차례 쓰다듬었습니다.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녀셕은 꼬리를 치켜웠습니다. 찾아보니 호감 표시라고 합니다. 서로의 호감을 확인한 뒤 저는 평일 저녁과 주말 오전 츄르를 들고 녀석을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넉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먼 발치에서도 저를 알아보는 듯합니다. 저는 녀석에게 ‘사랑’이란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사랑이에게 츄르를 먹이면서 쓰다듬는 일이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이는 제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가만히 들어줍니다. 사랑이와 시간을 나눈 날은 마음이 평온합니다. 힐링이 따로 없었습니다. 사랑이를 만지며 내가 누군가로부터 쓰다듬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문득 생각했습니다. 어찌보면 내가 사랑이를 쓰다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가 나를 쓰다듬고 있구나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알아달라는 건 안아달라는 것이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제 마음을 알아주고 안아주는 사랑이와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야겠습니다. 당신은 쓰담쓰담해주는 존재가 있나요?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