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지난 19일 대법원은 잘못 송금된 14억 상당의 비트코인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고 사용한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보통 잘못 이체된 돈을 사용하면 ‘횡령죄’의 적용을 받는 것과 다른 판결이 나온 것이다. 2018년 7월 대법원은 예금계좌에 돈이 착오로 잘못 입금된 경우 예금주와 송금인 사이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성립돼, 함부로 인출해 소비하면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같이 판례가 엇갈린 것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이 현행법상 ‘법정통화’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A씨를 무죄로 판단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관련 법률에 따라 법정화폐에 준하는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다”며 “착오 송금에 횡령죄 성립을 긍정한 판례를 유추해 신의칙을 근거로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파기환송심 재판부 역시 가상자산이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A씨를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은 현행법상 ‘법정통화’로 인정되지 않는다. (사진=연합뉴스)
‘유사수신행위법’ 적용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산 암호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 당시 투자자들은 해당 암호화폐 발행사 테라 폼랩스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가 유사수신행위법을 위반했다며 고소·고발했다. 권 CEO가 신규 투자자를 모집하려 지속 불가능한 연이율 19.4%의 이자 수익을 보장하면서 수십조원의 투자를 유치해 유사수신행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해도, 권 CEO를 유사수신행위법으로 처벌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유사수신행위법이 ‘법정통화 화폐’만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형사처벌을 위해 가상자산을 법정통화로 인정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가상자산은 가격 급등락 등 변동성이 극심하고, 탈세 등 불법행위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블룸버그 등 주요 언론에서 가상자산이 법정화폐와 경쟁하며 통용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했다"며 가상자산의 법정통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을 규제하기 위한 법규 마련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실존하는 시장임에도 투자자 보호장치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13일 정부와 국민의힘은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율규약’을 도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관련 법 제정에 나설 것을 암시했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주식과 부동산 시장 등 대부분의 규제는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라며 “신뢰 확보를 위해서라도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우석 아주로앤피 변호사도 “현재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법률이 명확히 정리돼 있지 않은 상태”라며 “기존 자본시장법 등을 도입하기 어려운 만큼 암호화폐에 관련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오른쪽)과 윤창현 가상자산특별위원장(가운데)이 지난 5월2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루나·테라 사태, 원인과 대책'을 주제로 열린 긴급세미나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맨왼쪽은 가상자산특위 위원인 전인태 가톨릭대 교수. (사진=연합뉴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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