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나토가 이번 달 7일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에 대해 각각 탈퇴와 효력 중단을 선언했다. CFE는 냉전 말기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각자 재래식 무기에 상한선을 설정한 군축 조약이다. 특히 공격용 5대 무기(전차, 장갑차, 야포, 전투기, 공격용 헬기)의 감축을 달성함으로써 유럽은 이전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안정적인 재래식 균형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는데, 조약 체결 30여 년 만에 이 기념비적 조약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중요한 군비통제 조약들이 잇따라 폐기되고 있다. 2019년엔 트럼프 행정부가 중·단거리 핵미사일 배치를 금지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 참여 중단을 선언했고, 러시아는 올해 2월 실전 배치 핵탄두를 1,550개로 제한하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참여 중단을 발표했다.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타결시킨 INF는 냉전 종식을 상징하는 역사적 조약이었고, New START 조약은 미-러 간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핵 군축 협정이었다. 또한 러시아는 지난 2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대해서도 비준 철회를 발표했다. 이처럼 불과 몇 년 사이에 핵과 재래식 군비경쟁의 무한 질주를 제어하던 봉인들이 하나둘씩 벗겨지고 있는 모양새다.
군비통제 조약이 평화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법률적 통제나 신사협정보다 강력한 억제력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 억제력 강화는 불가피하게 상대의 안보를 위협하는 효과를 낳기 마련이다. 군비경쟁의 사이클이 작동하고 결국 자신의 안보도 위태로워지는 역설적 상황이 초래되는 것은 바로 이 안보딜레마 때문이다. 억제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군비통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혹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전략경쟁의 시기에 군비통제는 비현실적인 희망 사항이 되었다고 간주한다. 러시아와 나토가 사실상 ‘간접 전쟁’을 치르고 있고, 군비경쟁이 미·중·러 3자 구도로 전환한 상황에서 냉전 시대의 군비통제 체제가 적실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해서 군비통제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럴수록 군비통제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현재 폐기되고 있는 군비통제 조약들만 보더라도 냉전의 한복판에서 전쟁의 위험과 군비경쟁의 무익함을 어떻게든 통제해 보려는 치열한 노력의 성과물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63년 6월 10일 케네디 대통령은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고 난 후 미·소 모두 출구 없는 냉전적 사고를 털어버릴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의심이 의심을 낳고, 신무기 개발이 또 다른 대응 무기 출현을 낳는 악순환”을 낳는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핵무기 경쟁에 쓰이는 엄청난 돈은 무지와 가난, 그리고 빈곤과의 싸움에 쓰여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케네디가 보낸 평화의 메시지에 후르시초프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고, 연설 6주 후에 부분적핵실험금지조약(PTBT) 타결이란 성과를 낳았다. 지난 2일 러시아가 비준 철회를 밝힌 CTBT의 전신이다. ‘악의 제국’을 운운하며 냉전의 긴장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던 레이건 대통령도 결국 군비통제의 길을 선택한 바 있다. 1983년 나토의 대규모 훈련(Able Archer Exercise 83)에 대해 소련이 실제로 핵전쟁 공포를 느꼈다는 첩보를 접하고 나서였다. 훈련 일주일 후인 11월 18일, 레이건은 일기에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내가 볼 때 소련은 공격당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게 여기 그 누구도 그런 행동(선제공격)을 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얘기해 줘야만 한다.” 참모들과 정책의 전환을 논의한 레이건 대통령은 1984년 1월 TV 연설에 나섰다. 소련에 군비경쟁을 줄이고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호소한 것이다. 고르바초프와 합의에 이른 역사적 INF 조약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군비통제는 안보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긴장 완화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결코 상대의 선의에 기대는 무장해제를 뜻하지 않는다. 현재보다 낮은 수준에서 전쟁 억제와 안보가 가능하다는 발상이 바로 군비통제 사고의 토대다. 갈등의 근원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전략적 안정을 꾀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현상유지적인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 목표조차 현재로선 도전적으로 느껴진다. 과거를 잊은 듯 인류는 다시 군비경쟁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냉전 시대의 군축조약이 폐기되고 9.19 군사합의 파기가 논의되는 오늘날, 군비통제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본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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