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언제나 전쟁의 양상을 바꿔왔다. 16~18세기 화약 혁명으로 화승총으로 무장한 보병이 등장하면서 화려했던 중세 기병이 사라진 것은 그 일례다. 1, 2차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면서는 기계화, 전력, 철도의 발전으로 전차, 항공기, 장거리 폭격기가 등장했고, 전쟁은 그야말로 대량파괴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이 보여주듯이 전쟁은 더 이상 용병에 의존하는 제한전이 아니라 국가의 산업역량과 국민을 총동원하는 국가 총력전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또한 3차 산업혁명으로 컴퓨터와 통신 등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자, 효과기반작전(EBO: Effects-Based Operation)이 주목을 받고 있다. 걸프전과 이라크전에서 나타났듯이 적의 물리적 군사력을 격멸하기보다 전쟁지도부 등 상대의 전략적 급소를 파괴함으로써 작전의 요망된 효과에 집중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기술은 전쟁의 양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미 해군이 발전시키고 있는 분산해양작전(DMO: Distributed Maritime Operation)을 보면 미래전이 어떤 모습을 띨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미 해군은 다수의 소형 유·무인 함장과 잠수함을 물리적으로 분산 배치하되 통합된 지휘통제체계로 엮어내는 초연결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초소형 위성 등 우주 기반 감시체계 보편화와 장거리 정밀 미사일의 등장으로 항공모함과 같은 대형 함정의 군사적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 해군은 무인수상정과 무인잠수정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항속거리가 1만 해리에 달하는 무인수상정 Sea Hunter를 2016년부터 건조하기 시작했고, 약 3개월간의 수중작전 능력을 갖춘 무인잠수정 Echo Voyager도 개발하고 있다. 미 공군이 추진하는 모자이크전(Mosaic Warfare), 미 육군이 발전시키고 있는 다영역작전(Multi Domain Operation)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미래전을 규율하는 핵심 원리는 초연결성과 초지능성으로서 전투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유인에서 무인으로 전환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즉, 미래전에서는 무인 무기체계가 전장을 주도하고, 인간은 직접적 전투보다는 C2(지휘통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소위 AI 참모가 활용되면서 분산 배치된 군사적 자산들이 효과적으로 연결되고, 탐지·판단·결심·행동으로 이루어지는 작전 순환이 자동화되며 빨라질 것이다. 또한 전장 영역이 지상, 해상, 공중의 3차원을 넘어 우주와 사이버, 그리고 인간의 인지 영역으로 확대되며, 이런 다차원 영역이 긴밀히 연결되는 융합전의 양상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 군도 <국방혁신 4.0>을 통해 국방태세 전반의 재설계와 과학기술 강군으로의 도약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핵 대응 능력 강화, 군사전략 개념 발전, 첨단전력 확보, 군구조 및 교육훈련 혁신, 국방 R&D 체계 재설계 등 5대 중점과 16개 과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확보, 국방 AI 센터 창설 등 미래전 수행에 필수적인 기반체계와 전력확보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 등 군사 강국이 주도하는 미래전 대비에 우리도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다만 아쉽고 우려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 먼저 국방혁신 4.0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미래전에 부합하는 군사전략의 실체가 무엇인지, AI 기반 핵심 전력으로 무장된 군사력의 모습과 군구조의 형태가 어떤 모습을 띨 것인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2045년까지 ‘유인 함정 350척 + 무인 함정 150척’의 하이브리드 해양전력을 구축하겠다는 미 국방부의 <Battle Force 2045> 계획을 참고할 만한 하다. 또한 최종상태 규정과 함께 연도별, 단계적 목표가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목표와 단계가 분명히 정의되어야 국방혁신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효적 추진과 사후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AI 과학기술 강군 육성은 수단과 방법이지 그 자체로 대한민국 국방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우선적인 과업은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안보 위협을 특정하고 이에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 것인지(how to fight)를 정립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미래 혁신 기술이 어떤 분야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고, 가용 자원 범위 내에서 선택과 집중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칫 기술 만능주의에 경도되어 ‘국적 없는 군사 혁신’이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결국 대한민국 국방의 핵심 과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으로부터 오는 도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있다. 미래전 대비와 북핵 대응 노력이 따로 놀아서는 안 되고, 중국의 위협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시나리오에 입각해서 군사 목표와 전략을 정립해야 한다. 서해와 남해상의 저강도 분쟁 시 중국의 해·공군력을 거부하는 ‘거부적 억제’ 전략이 그 일환이 될 수 있다. 기술이 초래하는 ‘전쟁의 미래’에 대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벌어질 ‘미래의 전쟁’을 고민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진정한 숙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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