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 11일 "피의자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그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시 제재하는 법률제정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영국 등 외국 입법례를 참조하여 법원의 명령 등 일정요건 하에"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강행 수순이다. 참여연대 지적처럼 이명박 정부가 도입하려다가 반인권적, 반헌법 시도라는 반발에 부닥쳐 접은 '사법방해죄'와 다를 바 없다.
논란이 거세지자 추 장관은 하루 뒤 페이스북을 통해 법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어떤 검사장 출신 피의자가 압수대상 증거물인 핸드폰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껍데기 전화기로는 더 이상 수사가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다고 합니다"라고 말이다. '검사장 출신 피의자'는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다. 법무부가 입법으로 수사를 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이튿날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까지 "반인권적, 반헌법적"이라며 반대성명을 냈다. 정확히는 반대에 더해 추 장관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쯤 되자 법무부가 허둥지둥 나섰다. 법무부는 13일 추 장관의 지시에 대해 "n번방 사건, 한동훈 연구위원 사례 등을 계기로, 디지털 증거에 대한 과학수사가 날로 중요해지고, 인터넷 상 아동 음란물 범죄, 사이버 테러 등 새로운 형태의 범죄에 관한 법집행이 무력해지는 데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추 장관이 지목한 한 검사장 외에 'n번방 사건'과 '사이버테러'에 대한 우려가 덧붙었다. 즉흥적이라는 냄새가 난다. 추 장관이 페이스북에서 도입의 필요성을 강변한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발전한다"는 말을 곱씹어 보면 더 그렇다.
추 장관과 법무부는 대표적 외국 입법례로 영국의 '수사권한 규제법'을 들었다. 그러나 영국 입법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해당 법률을 보면, 국가안보와 중대범죄 방지, 국가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로만 대상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인권 침해 우려가 크다는 고려에서다. 추 장관이나 법무부 말 대로 '피의자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처럼 일반적이지 않다.
영국에서는 2018년 4월 추 장관이 도입하려는 법률과 비슷한 효력이 있는 경찰의 '휴대전화 콘텐츠 다운로드 기기' 사용을 두고 인권침해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나 개인 동의 없이 특정인의 휴대전화 저장물을 복제하는 수사기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은 2019년 1월 경찰이 협박 피의자의 범죄를 입증하기 위해 스마트폰 잠금해제를 요청한 수색영장을 기각한 사례도 있다. 영장을 기각한 웨스트모어 판사는 "피의자가 비밀번호를 말하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권력이 피의자의 손가락을 강제로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에 갖다 대도록 강요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추 장관과 법무부는 미국의 입법례를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악의적 수사방해는 엄벌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피의자의 스마트폰 비밀 해제 따위가 과연 입법으로 강제 할만한 것인가. 수사기관의 기술적 무능을 탓함이 온당할 것이다. 이런 것을 해결하라고 국민들이 천문학적 세금을 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추 장관이 도입하겠다는 법률은 태생부터 위헌성이 짙다. 헌법상 '자기부죄의 원칙(모든 국민에게는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누구든지 그 진술을 강요할 수 없다는 형사상의 특권)'에 정면으로 반하기에 조화를 이룰 수도 없다. 또, 형법상 '증거인멸 등과 친족간의 특례'와의 충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나라 최고 법률전문가들인 법무부장관과 법무부가 수사기관의 무능함을 국민의 인권을 담보로 한 입법으로 막아보려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최기철 법조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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