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면죄부’, ‘무늬만 준칙’ 등 한국형 재정준칙을 향한 집중포화는 과도한 빚 탓에 나라가 망할 것처럼 헤드라인만 장식한 채 일단락됐다. 재정을 더 풀어야 할 시점에 불필요한 논란을 더욱 부추긴 것은 사실상 기획재정부 수장이었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국제신용평가사의 평가와 달리 ‘연말 국회 제출’을 고수하던 홍남기 부총리의 의중이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의문이 든다. 물론 재정준칙의 필요성이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염병 창궐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의 가중과 적극적 재정역할이 필요한 골든타임에 ‘하필 왜’라는 물음이 나온다.
재정준칙 정쟁에 선을 긋지 못한 홍 부총리의 태도는 여러 뒷말이 나왔다. 역대 수장 중 부채를 가장 많이 남긴 타이틀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둥, 보수진영에서 심은 X맨이라는 둥. 기재부 출신인 홍 부총리의 선배조차도 ‘조물딱 거리다가 결국 괴물같이 해괴망측한 국민기만 준칙을 만들었다’는 비난까지 할 정도였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때마침 등장한 전경련 산하의 ‘재정 건전화, 독일에게 배워라’라는 연구보고서다. 재정적자를 엄격히 통제하는 준칙을 도입한 독일의 재정건전성을 지목하는 등 우리나라 도입의 필요성을 부추긴 것이 핵심이다. 유튜버로까지 나선 홍 부총리의 재정준칙 강의 속 표에도 독일의 높은 재정건전성을 엿볼 수 있다. 언론들도 앞 다퉈 독일이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해결하기 위해 ‘재정준칙’을 도입한 사례를 거론하며 날을 세웠다.
하지만 독일의 사례는 양상이 다르다. 오늘날 세계 4위의 경제대국 영광을 누리기까지는 2조 유로의 통일비용을 짊어진 ‘유럽의 병자’로 취급돼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성장률을 기록한 일명 ‘독일병’을 해결하기 위해 단행한 노동개혁이 있다. 독일 사민당 슈뢰더 총리가 핵심 지지층인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하르츠 개혁’이 대표적이다.
그런 독일조차 코로나19로 역대최대의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72%까지 급등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허용범위 내인 60% 아래보다 치솟은 수준이다. 잇단 봉쇄조치로 자영업자와 소매업체들의 피해가 광범위해지면서 파산 직전에 몰린 이들에게는 ‘잔혹한 계절’로 불리고 있다.
실용주의자인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 겸 부총리는 “재정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는 표현까지 할 정도다. 우리나라의 고통 수준도 별반 다르지 않다. 3차 확산으로 경기가 다시 위축되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은 예사롭지 않다.지난 2~3월과 8~9월에 비해 광범위하고 빠르다는 점을 들어 서비스 소비를 중심으로 한 내수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선별적 지원이 아닌 설날 전 보편 지급으로 내수시장을 살려달라는 간절함을 호소하고 있다. 8조원을 투입한 2차의 선별은 건물주와 통신사만 유익을 봤다는 분통만 서려있다. 1차 효과가 분명한데도 간절한 중소상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맞춤형’을 또 내밀고 있으니 경제팀의 ‘잔혹사’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독일에게 배우라했던가. 72%까지 급등한 채무비율까지는 아니어도 내수진작을 위한 경기유발 효과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내년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47.3% 수준으로 OECD 평균 110%에 비해 양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누굴 위한 맞춤형인지 잔혹한 그 속내를 알고 싶다.
이규하 정경부 경제팀장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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