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붉은 응원단장풍 재킷, 굳게 다문 입, 귓가에 손을 갖다대는 제스쳐….
'마왕' 신해철(1968~2014년)이 맞았다. 2021년 새해 벽두를 1시간 가량 앞둔 시간. 일거 온라인 채팅창은 "소름 돋는다"는 글들로 마비됐다.
지난달 31일 오후 9시30분부터 다음날까지 플랫폼 위버스를 통해 중계된 빅히트 레이블즈의 합동 공연 '뉴 이어스 이브 라이브(NEW YEAR’S EVE LIVE)'. 인공지능(AI) 기술로 구현된 '홀로그램 신해철'이 무대 가운데 서서 두 팔 벌려 포효하자 실제 그를 보는 듯한 환영이 일었다.
빅히트 레이블즈 'NEW YEAR'S EVE LIVE'에서 구현한 신해철 홀로그램. 사진/‘빅히트 레이블즈(Big Hit Labels)’
이날 '홀로그램 신해철'은 후배가수들(범주, 뉴이스트 백호, 여자친구 유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태현, 엔하이픈 희승)과 함께 대표곡 '그대에게'를 열창했다. 카메라 여러대는 시종 후렴구를 나눠 부르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떼창을 이끌어내는 그의 모습을 비췄는데, 실제 살아있는듯 생생한 느낌을 줬다.
한국적 소리와 장단으로 외연을 확대한 편곡과 남사당놀이패, 북청사자놀음까지 동원시킨 무대 기획도 참신했다.
세계적인 감염병 장기화에 색다른 기획, 연출의 비대면 공연 흐름이 새해벽두부터 이어지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세계적인 팝스타 라우브의 홀로그램과 협업 하고 있다. 홀로그램은 라우브가 직접 찍어 보내온 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진/빅히트 레이블즈(Big Hit Labels)
고 신해철부터 라우브까지…국경·시간 넘는 비대면의 확장성
이날 오후 9시30분부터 다음날까지 진행된 'NEW YEAR’S EVE LIVE'는 아티스트별 최적화된 5개의 대형 스테이지를 만들고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기술을 활용해 생동감을 살렸다.
6개 화면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멀티뷰 시스템이 온라인 공연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4개 화면으로 공연 모습을 보고 2개의 화면으론 무대 뒤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밋 앤 그릿(MEET & GREET)’행사를 동시에 관람하는 것이 가능했다.
홀로그램 신해철(가운데)과 빅히트 레이블즈 후배 뮤지션들의 합동 공연. 사진/‘빅히트 레이블즈(Big Hit Labels)’
공연은 “우리는 연결돼 있다(We’ve connected)”란 주제를 내세웠다. 아티스트와 아티스트, 팬과 팬, 아티스트와 팬, 그리고 2020년의 마지막과 2021년의 처음을 잇는다는 콘셉트로, 신해철과의 합동 무대로 이런 맥락 아래 진행됐다.
이날 '홀로그램 신해철'이 등장하기 전에는 빅히트 소속 가수들이 밴드와 함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 프로토타입 버전을 선보이는 순서도 마련됐다. 신해철이 생전 미완성 상태로 남긴 곡으로, 이번 헌정 무대로 처음 세상에 들려졌다.
해외 뮤지션들의 참여는 '빅히트식 비대면 공연'의 새로운 확장 가능성도 보여줬다. 방탄소년단은 홀로그램 기술로 무대에 등장한 라우브의 기타 반주에 맞춰 ‘Make It Right (feat. Lauv)’을 열창했고, ‘MIC DROP (Feat. Steve Aoki)’, ‘작은 것들을 위한 시 (Feat. Halsey)’ 무대에서는 대형 LED로 각각 비춰진 스티브 아오키, 할시와 합동 무대를 꾸몄다.
할시의 LED영상과 방탄소년단(BTS)이 협업한 보이윗럽 무대. 사진/‘빅히트 레이블즈(Big Hit Labels)’
"음악에는 장벽 없다"…21세기 '라이브에이드' 전초전?
1일 오후 1시에는 SM엔터테인먼트가 4시간 동안 온라인 콘서트 ‘SM타운 라이브 컬처 휴머니티’를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2008년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뉴욕·파리·두바이 등에서 진행해온 ‘SM타운 라이브’의 온라인 버전이다.
SM은 지난해부터 네이버와의 합작 공연 플랫폼 '비욘드라이브'를 개설하고 유료 비대면 공연을 열어왔다. 이번 공연에서는 유튜브·트위터·페이스북·틱톡 등 플랫폼의 세를 넓히고 무료로 중계 방식을 택했다. 샤이니, 동방신기, 레드벨벳, SuperM, 에스파, NCT 등 SM 소속 가수들이 출연했다. 전날 SM에 따르면 생중계기간 동안 해당 영상은 186개국에서 조회 수 3583만회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SM 역시 화면을 뚫고 날아가 듯한 비행기나 거대한 푸른 숲 등의 배경을 AR(증강현실)·그래픽 효과로 구현하며 온라인 공연 만의 차별점을 극대화했다. 일각에선 지난해 9월 열리지 못한 자선 콘서트 '글로벌 골 라이브: 더 파서블 드림'의 전초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수만 프로듀서가 기획자로 참여할 예정인 '글로벌 골 라이브'는 21세기판 '라이브 에이드'로도 불린다. 일단 올해 9월25일로 일자가 미뤄진 상태다.
이날 공연에 앞서도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는 "음악은 장벽이 없다. 언어없이 우리가 소통할 수 있고, 서로에게 또 각자에게 큰 위로와 치유가 되기도 한다"며 "SM 프로듀싱 시스템의 기반인 CT(Culture Technology)의 핵심 역시 휴머니티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서로 배려하고, 겸손하고, 사랑하자"고 기획 취지를 밝혔다.
'SM 타운 라이브 컬쳐 휴머니티' 레드벨벳 무대. 사진/SM엔터테인먼트
서태지, 넬, 혁오…유튜브부터 키노앨범까지
좀처럼 줄지 않는 코로나 확산세에 라이브 중심의 뮤지션들은 고민이 더 커지고 있다.
오프라인 공연 때 활용하는 콘솔 등의 음향 장비를 온라인 공연에 활용한다 치더라도, 실제 출력되는 사운드는 현장 라이브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스타급 밴드들은 차라리 과거 공연 때 찍어둔 고퀄리티 영상 작업들을 유튜브나 키트앨범(키노) 등의 매체로 내놓고 있다.
서태지는 지난달 24일 크리스마스이브를 기념해 과거 공연 '일겅 남녀차별 AFTER PARTY' 영상을 유튜브로 무료 상영했다. 지난 2015년 9집 'Quiet Night' 활동을 종료하던 시점, 세 차례(3월13~15일)에 걸쳐 진행한 콘서트다.
유튜브에 무료로 업로드된 서태지 '일겅'. 다큐멘터리와 공연 영상을 혼합했다. 사진/서태지컴퍼니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당시 13일엔 여성 팬들, 14일엔 남성 팬들, 15일엔 남녀 혼성 팬들로 나눠 진행한 이색적인 공연이다. 서태지 최초의 홍대 클럽 공연이란 이름으로도 유명했다.
밴드 넬은 지난해 연말 진행한 단독 공연 'Chrismas in NELL'S ROOM 2019' 영상을 키트앨범으로 제작해 사전 주문을 받아 제작 중이다. 키트앨범은 스마트 디바이스의 전용앱과 연동해 앨범 내 영상과 커뮤니티 등의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매체다. DVD나 블루레이 형태의 소비가 점차 줄어들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영상에는 지난해 공연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등의 짧은 다큐멘터리도 수록된다.
넬은 지난해 국내를 포함 일본 도쿄와 오사카, 미국 12군데 글로벌 투어가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 여파로 취소되면서 최근 앨범 작업에 한창이다. 따로 비대면 단독 공연을 진행할 계획은 없다. 오프라인 공연에서의 음향 시스템을 온라인에서 100% 구현해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유튜브에 올라온 넬 'Colors In Black' 공연 영상 티저.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공식 유튜브 캡처
밴드 혁오 역시 지난해 총 19개국, 42개 도시에서 44회 진행 예정이었던 월드투어 '사랑으로(Thorugh Love)'를 취소해야했다. 글로벌 밴드로 비상할 시점에 닥친 악재다. 다만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끝내 온라인으로 선회 결정을 내렸다. 오는 30일 유료 버전의 온라인 월드투어 'Thorugh Love'를 스트리밍으로 상영한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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