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산하 기관 임원 사직 요구 등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재판장 김선희·임정엽·권성수)는 9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장관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의 태도를 볼 때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그를 법정구속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9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 1심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퇴 거부자 표적감사로 사표 받아 내"
재판부는 김 전 장관에 대해 "피고인은 청와대와 협의해 원하는 사람을 산하 공공기관 임원으로 임명하기 위해 일괄 사표를 징구했고, 그 과정에서 사표 제출을 거부하는 임원에 대해서는 표적감사를 실시해 사표를 제출받았다"며 "환경부 공무원들이 내정자들에게만 기관 업무보고나 면접 예상 질문을 제공하고, 심지어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내정자에게는 지원 자격을 보충해주고, 업무계획서 및 자기소개서를 대신 작성해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원추천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는 환경부 실·국장은 서류심사와 면접심사에서 추천배수를 늘리고 우호적인 발언을 하거나 최고 점수를 부여해, 결국 내정자들이 각 임추위에서 최종 후보자에 들게 했다"며 "그 과정에서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내정자 박모씨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하자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임추위 면접심사에서 서류심사 합격자 7명을 모두 불합격 처리하게 하고 관련 공무원을 질책했으며, 당시 임추위 위원이었던 환경부 국장을 부당하게 전보조치까지 했다"고 말했다.
"선량한 피해자 130여명 달해"
또 "피고인이 위법하게 징구한 사표 제출자가 13명이고, 적정성·공정성을 상실한 임추위로부터 추천돼 공공기관 임원으로 임명된 사람들이 15명이며, 형식적인 임추위에 동원돼 그들의 정당한 심사업무가 방해된 임추위 위원이 80여명이고, 정당하게 심사되는 공모절차임을 믿고 지원한 선량한 피해자인 지원자가 130여명에 이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수사와 전 재판과정에서 청와대와 환경부가 공공기관 임원 내정자를 나누어 정한 적이 없고, 사표 징구 계획이나 내정자들에 대한 지원행위는 자신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환경부 공무원들이 알아서 한 것이며, 표적감사와 보복성 인사 등은 실행한 적이 없다는 등 일체의 관련성을 부인하며 자신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그 모든 책임을 자신을 보좌하였던 환경부 공무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혐의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재판에 넘겨진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 정권 인사들 사퇴 강요도 유죄
김 전 장관은 전 정권에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내게 한 혐의, 청와대가 추천한 상임감사 후보 박모씨에 대한 면접점수 만점 등 '현장 지원'을 임원추천위원인 실·국장에게 지시한 혐의가 일부 유죄로 인정됐다.
실·국장에 대한 내정자 현장 지원 지시, 내정자 존재 사실과 사전·현장 지원 등을 알리지 않은 업무방해죄는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내정자 탈락을 이유로 임추위에 '적격자 없음' 의결을 지시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그에 따른 업무방해 혐의 등도 유죄 판단했다.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에게 사직서를 제출케 한 혐의는 강요죄 유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는 무죄로 봤다. 환경부 공무원에게 문책성으로 전보인사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도 유죄로 결론 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무죄
반면, 청와대가 추천한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후보 박모씨가 임추위 서류심사에서 떨어지자, 임추위 면접심사에서 '적격자 없음 처리 및 재공모 실시'가 의결 되도록 조치한 혐의는 무죄로 봤다. 다른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도 전부 무죄 판단을 받았다.
김 전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일반적 직무권한이 있는지, 그 권한으로 직권을 남용했는지, 대상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으나 대상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 여부가 인정되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의 사표 제출 요구와 임원 선임 절차 등은 환경부 공무원을 통해 진행됐다. 재판부는 환경부 공무원에게 산하 기관 임원 선임 절차에 관여할 고유 권한과 역할이 없다고 봤다. 이들의 행위는 김 전 장관을 보조하는 데 그쳐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김 전 장관 측 "아쉬움 많이 남아…항소할 것"
선고 직후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사실관계나 법리 적용 관련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항소심에 잘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2017년 12월~2018년 1월 환경부 공무원을 시켜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 임원 15명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혐의를 받는다. 2018년 7월에는 청와대가 추천한 환경공단 상임감사 후보 박모씨가 임추위 서류심사에서 떨어지자, 임추위 면접심사에서 '적격자 없음 처리 및 재공모 실시'가 의결 되도록 조치한 혐의 등도 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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