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 데려와 키운 '명탐정 코난' 빼앗길 순 없어"
코난 납품사 에스에스 애니멘트 박기종 대표
"요미우리TV 직접 설득해 한국 방영 결정"
"CJ ENM과 요미우리TV 직계약은 부정경쟁"
"사업이 약육강식이라면 ESG 말하지 말라"
2021-07-26 06:00:00 2021-07-26 16:09:13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이 최근 한국에서 양육권 다툼(?)에 휩싸였다. 투니버스 채널 운영사 CJ ENM에 코난을 납품해 온 에스에스 애니멘트는 지난 22일 CJ ENM이 시장지위를 남용해 저작권사와 방영권 직접계약을 맺어 부정경쟁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지난 16일 서울 금천구 사무실에서 만난 박기종 에스에스 애니멘트 대표는 이번 제소를 '을의 반란'으로 규정했다. 박 대표는 "콘텐츠 같은 무형 자산에 대해 지금까지 이런 식의 갑질 사례는 없었다"며 "영세한 에이전트 입장에서 대기업이 잘못하면 싸울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코난의 한국 정착' 역할 자부"
 
에스에스 애니멘트는 CJ ENM이 중소기업과의 지속적 거래 관계를 배신하고 코난 TV 시리즈 저작권사 요미우리TV에 고액의 계약금을 제시하며 2017년엔 국내 방영권과 더빙판 VOD 사업권, 올해엔 자막판 VOD 사업권을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코난 시리즈가 한국에 정착하는 데 에스에스의 역할이 컸다고 자부한다. 코난 1기는 2000년 KBS 2TV에서 방영됐다가 '아이들에게 범죄를 가르친다'는 학부모 단체 항의 속에 종영됐다.
 
일본에선 한국 지상파 재진출을 염원했지만 쉽지 않았다. 국내 방영권을 가진 서울문화사 창고에 먼지가 쌓여갔다. 서울문화사와 손오공 합작으로 2002년 세워진 에스에스는 돌파구를 찾았다. 2004년 케이블 채널 투니버스와 코난 2기 공급 계약을 맺은 것이다.
 
당시 박 대표는 지상파를 향한 요미우리TV의 고집을 꺾고 애니메이션 케이블 TV로 방향을 틀어 코난을 키우자고 설득했다. 이때부터 '요미우리TV-에스에스-투니버스'의 프로그램 공급 방식이 만들어졌다. 온미디어 소속이던 투니버스가 CJ ENM으로 옮긴 이후에도 이런 관계가 이어졌다.
 
박 대표는 2007년 코난 VOD 서비스를 시작하기까지 저작권사를 설득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VOD 사업에 나서도록(요미우리TV를) 설득한 보고서가 과장해서 말하면 컨테이너 하나 분량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종 에스에스 애니멘트 대표가 지난 16일 금천구 사무실에서 '명탐정 코난' TV판 사업을 위해 요미우리TV, CJ ENM과 맺은 계약서 파일을 꺼내보이고 있다. 그 뒤로 명탐정 코난 단행본이 진열돼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우여곡절은 계속됐다. 심의 환경상 '쿠도 신이치(코난)'를 '남도일'로 불러온 국내 현지화 방식을 일본 측에 납득 시키는 한편, 자막판으로 원작 수요를 충족하는 사업도 폈다. 박 대표는 "어느날 중국 누리꾼이 한국 코난이 왜 남도일로 불리는지, 나리타 공항이 어째서 인천공항인지 문제 삼았다"며 "일본에서도 기사화 돼 만화 원작사 소학관(쇼가쿠칸)에서 이의제기가 들어왔다"고 아찔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박 대표는 현지화가 필수였던 국내 방송 환경에 대한 보고서를 보내 논란을 끝냈다. 일본 측 요청 없이 에스에스가 주도한 자막판 VOD 사업도 논란을 끝내는 데 영향을 줬다. 박 대표는 "요미우리TV 쪽에서 들은 뒷얘기로는, '(한국에서) 현지화를 하고 있지만 에스에스에서 오리지널로 자막판을 내고 있다'고 원작사에 설명해 (문제제기가) 끝났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사업, 아이 키우기와 같아"
 
평소에도 에스에스는 한국 상황을 궁금해 하는 요미우리TV를 위해 꾸준히 보고서를 보내며 신뢰도를 높여왔다고 한다. 적어도 2016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코난 14기 방영권 계약 준비 작업을 앞둔 그해 가을, 요미우리TV 측에서 'CJ ENM과 방영권을 직계약 하겠다'는 이메일을 에스에스로 보내왔다. 박 대표는 "이때가 첫 번째 뒤통수"라며 "그때는 저희가 대기업과 싸울 생각을 못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아직 자막판 사업은 남아있었다. 박 대표는 "CJ ENM과 싸우지 못 할 바에는 자막판을 키우자는 생각으로 기존 9기~13기만 있던 자막판을 1기부터 (빈 칸 채우듯) 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기 계약 준비 작업을 앞둔 지난해 12월에는 CJ ENM과 요미우리TV가 자막판마저 직계약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박 대표는 CJ ENM이 자막판 직계약 후, 그간 에스에스가 만든 자막판을 편당 20만원에 구입하겠다는 제안을 해와 거절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사업은 약육강식'이라고 한다면 인정하겠다"면서도 "그럼 대기업들이 더이상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이야기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중소기업과 상생하자는 룰은 왜 만들어졌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콘텐츠를 키우는 건 아이 키우는 일과 똑같다"며 "코난을 2004년부터 자식처럼 키웠는데, 다른 이가 빼앗아가는 꼴에 화가 나 못 참겠다"고 탄식했다. CJ ENM은 에스에스의 부정경쟁 주장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박기종 대표가 요미우리TV-에스에스-CJ ENM으로 이어진 코난 TV판 공급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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