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시장도 커졌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사업자까지 한국 시장을 주목하면서 토종 OTT의 생존 고민이 깊어졌다.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플러스·HBO맥스 등 글로벌 사업자의 진출이 예고되는 가운데,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데이터 분석 강화·결합 상품 개발 등 국내 OTT 산업을 위한 다양한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웨이브가 지난 8월 말 공개한 오리지널 콘텐츠 '유레이즈미업'. 사진/콘텐츠웨이브
토종 OTT 서비스들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다. 넷플릭스가 다수의 매력적인 자체 콘텐츠로 OTT 선두 사업자가 된 만큼 OTT의 경쟁력은 오리지널 콘텐츠 혹은 독점 제공 콘텐츠에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OTT가 기술 차별성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 콘텐츠가 핵심이며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는 황혜정 티빙 국장의 설명이 업계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황 국장은 "모든 플랫폼이 오는 2022년도에 더 많은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자 색깔들이 나올 것 같다"고 예측했다.
연초 넷플릭스가 올 한해에 국내 콘텐츠 제작시장에 55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국내 OTT 업체들도 줄줄이 콘텐츠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SK텔레콤을 대주주로 둔 '웨이브'는 오는 2025년까지 총 1조원 규모의 콘텐츠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양지을 티빙 공동대표, 이명한 티빙 공동대표. 사진/CJ ENM
티빙에 투자한 CJ ENM은 향후 5년간 연 평균 1조원의 콘텐츠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강호성 CJ ENM 대표는 지난 5월 "올해만 8000억원의 콘텐츠 투자 비용이 잡혀 있고, 향후 5년간(2025년까지) 총 5조원의 콘텐츠 투자를 실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티빙에 대한 투자도 포함됐다. 티빙은 특히 전체 오리지널 투자의 50% 이상을 프랜차이즈 지식재산권(IP)을 육성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지난 1월 첫 오리지널 콘텐츠 '여고추리반'을 공개한 티빙은 올 한해만 30편이 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티빙은 신서유기 스프링캠프, 환승연애 등 오리지널 콘텐츠 흥행에 연이어 성공하며 웨이브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쿠팡플레이가 지난 4일 독점 공개한 오리지널 콘텐츠 SNL 코리아. 사진/쿠팡
오리지널 콘텐츠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곳은 단연 쿠팡플레이다. 쿠팡플레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콘텐츠를 독점 서비스하며 OTT 업계 시야를 스포츠로 확장했다. 지난 4일에는 이병헌, 하지원, 조정석 등 스타급 배우와 SNL 코리아를 부활시켰다. 화제성 넘치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쿠팡플레이는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기준 172만명의 사용자를 기록하며 대표적인 국내 OTT 서비스 왓챠(151만)를 앞질렀다. 이영주 서울과기대 교수에 따르면 쿠팡플레이는 독립 제작사 인수·합병(M&A)을 시도하며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의지를 높이고 있다.
KT는 콘텐츠 전문 자회사 KT스튜디오지니를 통해 오는 2023년까지 4000억원 이상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입할 예정이다. 해당 콘텐츠는 이르면 3분기 내로 KT의 OTT 서비스 '시즌'에 서비스될 전망이다.
대세를 차지한 '오리지널 콘텐츠 수급 전략' 외에도 업계는 다양한 전략을 시도 중이다.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시청 예측 전략, 다양한 결합 상품 발굴, 특정 이용자를 타깃으로 한 특화 OTT 등이 눈에 띈다.
(왼쪽부터)문철수 한국OTT포럼 회장(교수), 이희주 콘텐츠웨이브 실장, 황혜정 티빙 국장, 원지현 왓챠 COO&공동창업자.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데이터를 강조하는 곳은 '왓챠'다. 왓챠는 OTT 비즈니스의 본질은 '시청 시간'과 '콘텐츠 추천 역량'에 있다고 본다. 사용 데이터로 구축한 개인화된 추천 서비스로 고객의 시청 시간을 늘린다는 것이다. 구독경제의 일종인 OTT의 성패는 시청 시간 확보를 통한 재구독률에 달려있다는 게 왓챠의 설명이다.
원지현 왓챠 COO 겸 공동창업자는 최근 열린 국제방송영상콘텐츠마켓2021(BCWW2021)에서 "오리지널 콘텐츠가 OTT의 전부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건(오리지널 콘텐츠는) 일부다"며 "소수의 오리지널 콘텐츠만으로는 OTT 비즈니스가 장기적으로 한계에 부딪힌다"고 꼬집었다. 왓챠는 OTT가 결국 구독경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많은 콘텐츠에서 골고루 꾸준한 시청량이 나와야 서비스 잔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원 COO는 "저희가 갖고 있는 10만개의 콘텐츠는 라이브러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98~99%가 한두 명의 사용자에게라도 도달된다"고 했다.
아마존프라임이나 쿠팡플레이 같은 결합 상품 전략도 최근 힘을 얻고 있다. 구독료라는 고정 가격을 둔 OTT 서비스는 최대한 많은 사용자를 모아야만 제작비도 회수하고 이익도 낼 수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빠르게 시장 포화를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결합 상품이 주목받는 분위기다.
특히 국내 기업은 인구 통계학적 한계가 있어 글로벌 기업과 경쟁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은 최근 한국방송학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콘텐츠진흥원 연속세미나에서 "가입자가 늘어나야 창출 가치를 늘려 경쟁력을 만들 수 있는데, 웨이브나 티빙이 모든 국민을 가입시켜도 5000만명밖에 되지 않아 글로벌 OTT와 비교했을 때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조차 최근 가입자 증가폭이 크게 줄면서 성장폭이 꺾이기 시작했다. 해외 진출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김 위원은 "지금까지 OTT가 미디어 연관 산업으로만 결합됐다면 이제는 자율주행차나 다양한 구독 플랫폼 등 산업간 입체적인 결합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사진/한국방송학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KCA '디지털 미디어 산업과 정책: 쟁점과 진단' 세미나 갈무리
이용자를 타깃팅한 '전문 OTT 전략'도 눈길을 끈다. 뉴스 OTT·스포츠 OTT·애니메이션 OTT 등 특화 전략을 펼치자는 것으로, 국내에는 애니메이션만 서비스하는 '라프텔'이 전문 OTT로 거론된다. 지역방송 OTT·트로트 OTT·일드 OTT 등 다양한 형태의 OTT가 존재할 수 있다. 김 전문 위원은 "꼭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형태로 OTT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화 전략으로 틈새시장을 노리는 OTT 개발도 중요하다"며 "이런 것들이 생각보다 성장성이 좋고 서비스를 확대하기 쉬운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자리 잡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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