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수입차 업체들의 인증 중고차 사업이 나날이 성장하는 반면 국내 완성차 업체의 인증 중고차 진출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최근 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을 두고 완성차와 중고차 업계의 최종 협상이 결렬된 만큼 합의안을 기다렸던
현대차(005380)도 더 이상 중고차 사업을 늦추기 어려울 전망이다.
테슬라 미국 홈페이지의 중고차 판매 화면. 사진/테슬라 미국 홈페이지
23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이달 말 홈페이지에 인증 중고차 페이지를 개설하고 국내에서 중고차 판매에 나선다. 인증 중고차는 제조사가 직접 중고차를 사들이고 검수해 판매하는 차를 말한다.
테슬라의 기본 차량 보증기간(미국 기준)은 4년 또는 5만마일(약 8만㎞) 중 먼저 도래하는 것을 적용한다. 중고차 보증기간은 남은 4년 또는 5만마일이 적용되고 만료 후 1년 또는 1만마일(약 1만6000㎞)의 추가 보증을 제공한다. 국내에서는 중고차 보증기간을 1년 또는 2만㎞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차 업계 1위인 메르세데스-벤츠도 인증 중고차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15일 론칭한 '메르세데스 온라인 샵'을 통해 전국의 인증 중고차를 한 눈에 보고 견적서를 요청하거나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 예약금 100만원을 온라인으로 결제하면 원하는 매물도 선점이 가능하다. 메르세데스-벤츠 인증 중고차는 공식 수입된 차량 중 6년 또는 15만㎞ 이내 무사고 차량이다. 1년 또는 2만㎞까지 무상 보증 수리를 제공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수입차 브랜드의 인증 중고차 매장은 101곳으로 메르세데스-벤츠(23곳)가 가장 많다. 이어 BMW 20개, 미니(MINI) 14개, 아우디 11개 등 국내에 진출한 수입차 업체 대부분이 인증 중고차를 운영하고 있다. 벤츠, BMW, 아우디 등 업계 1~4위 브랜드의 인증 중고차 판매량은 지난해 2만5680대에 달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1만5464대를 판매했다. 연 3만대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앞으로 미국이나 독일처럼 중고차 시장이 신차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중고차에 대한 적정한 가치를 보장해주고 신차 판매까지 연결되는 등 중고차 판매 방식이 다양해져 질 좋은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차 업체들과 달리 현대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아직 직접 중고차를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완성차와 중고차 업계의 상생합의안 도출도 실패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축으로 완성차·중고차 업계가 참여한 '중고차매매산업발전협의회'는 지난 10일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시장 진출 관련 최종 협상에서 결렬을 선언하고 중소벤처기업부로 안건을 넘겼다.
발전협의회에선 완성차 업계의 인증 중고차 범위를 5년 또는 10만km 이하, 시장점유율은 10%로 제한한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중고차 업계가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매입에 반대하고 신차 판매권까지 요구하면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중고차 시장 개방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는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등 소비자의 입장을 외면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는 "중고차 업계가 시장을 소비자 위주로 바꿔야한다는 반성과 함께 소비자 선택권을 중시해야 하는데 점유율을 나누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소비자를 놓고 영역 싸움을 할 게 아니라 제대로 현대차와 붙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현대차·
기아(000270)는 지난해 10월 중고차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문제는 애매한 정부의 태도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2019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진출이 금지됐었다. 이후 2019년 11월 동반성장위원회가 생계형 적합업종 '부적합' 권고를 내렸지만 최종 결정권을 가진 중기부가 지난해 5월 심의 기한을 넘겨 현재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중기부가 양측 간 갈등만 키운 채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제 중기부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 결정만 남게 됐다.
사실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다만 대기업의 독과점 이슈를 우려해 발전협의회에 일임해 중고차 업계와 중재에 나선 것이다.
발전협의회 좌장을 맡았던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중기부는 우물쭈물하면서 정치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심의위원회를 빨리 열어 결론을 내야 한다"며 "현대차도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반위 의견을 수용하되 대기업 플랫폼의 진출도 막으면서 골목상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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