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유라 기자]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시한이 임박하면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자료 제출 수위를 결정하기 쉽지 않은데다 미국 정부의 요구를 함께 받은 대만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TSMC가 입장을 여러차례 번복하면서 비일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어서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반도체 정보 제출 시한은 8일(현지시간)로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 상무부가 자율적으로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지만 사실상 반강제적 요구다. 미 정부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 국방물자생산법(DPA)를 근거로 자료 제출을 강제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관건은 기업들이 반도체 재고와 주문, 판매 현황 등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어느 수준까지 제공할 것인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부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힐 뿐, 미국의 요청에 응할지, 응한다면 어떤 자료를 제출할 지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정보 요구 제출 시한이 임박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고민이 깊어진다. 대만 TSMC 전경.사진/TSMC
기업 입장에선 난처한 상황이다. 미국의 요청대로 자료를 제출하기도,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외국 기업의 상황도 우리와 비슷하다. TSMC는 10월 초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업비밀 노출 우려로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이다. TSMC는 "고객과 주주의 이익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TSMC는 기존의 입장을 바꿔 기한내 미국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힌 데 이어, 불과 3일 후인 10월25일 또 다시 입장을 번복하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한달 사이에 여러차례 입장을 번복한 것을 보면 TSMC의 속내가 다소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TSMC와 미국 정부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TSMC 창업자인 장중머우 전 회장은 지난달 26일 대만에서 열린 위산테크 20주년 기념식 겸 포럼에서 "미국 정부는 반도체 미국 현지 생산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내 공급망이 불완전하고 생산 비용도 비싸 미국의 이런 목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작심발언을 날렸다.
이같은 발언은 TSMC가 미국에 대형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발표한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TSMC는 미국내 공장을 세울 경우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미국 정부의 약속에 따라 지난해 5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약속과 달리 보조금 지급이 늦어지면서 대만과 미국 사이에도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안은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공급망 재정비 움직임까지 맞물린 데다, 경쟁사와 고객사간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민도 그만큼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TSMC와 국내 기업들이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긴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의 관측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박사는 "미국 정부가 요청한 만큼 개인 기업의 입장에선 완전히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며 "적당한 선에서 최소한의 정보를 제출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최유라 기자 cyoora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