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사법개혁 공약에 대한 공개적 반대의사를 표명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강하게 비판하며 예정됐던 법무부 업무보고를 당일 취소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법조계는 박 장관의 발언이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었다고 지적하면서도, 법무부 업무보고 일정이 다시 잡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인수위원들은 24일 오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 업무보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윤 당선인의 검찰 관련 공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한 박 장관에 대한 경고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천막 기자실을 방문해 인수위의 법무부 업무보고 유예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국회사진기자단)
인수위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대해 40여일 후에 정권교체로 퇴임할 장관이 부처 업무보고를 하루 앞두고 정면으로 반대하는 처사는 무례하고 이해할 수가 없다"며 "예정돼 있던 법무부 업무보고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서로 냉각기를 갖고 숙려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른 시간에 법무부에 업무보고 일정의 유예를 통지했다"며 보고 유예 이유를 설명했다.
윤 당선인도 자신의 사법개혁 공약에 반발하는 박 장관을 놓고 "이 정부에서 검찰개혁이라는 것이 검찰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한 것인데 5년간 해 놓고 그게 안 됐다는 자평인가"라며 일침을 날렸다. 여기에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에 예산 편성권을 주는 등 검찰 독립을 강화하겠다는 자신의 사법개혁 공약을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의지도 담겼다.
박 장관의 입장과 달리 대검찰청은 인수위 업무보고를 앞두고 검찰 독립성을 강화하는 윤 당선인의 공약에 찬성하는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두 기관이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자 인수위는 관행을 깨고 법무부와 대검의 보고를 따로 받기로 했다. 자신들의 공약에 반대하는 법무부가 반대로 그 공약에 찬성하는 대검의 의견을 왜곡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가 오늘 예정됐던 법무부 업무보고를 유예한다고 밝힌 24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박 장관은 인수위의 통보에 대해 "오늘은 침묵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업무보고 취소 소식에도 박 장관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이날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난 박 장관은 "(대검과 법무부 입장이)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은 안 했다"면서도 대검과의 별도 업무보고 및 업무보고 취소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입을 닫았다.
법조계는 박 장관이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교체될 장관이 공약에 대해 왈가왈부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뜻이다. 법무부 차관을 역임한 한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의 대통령 당선인 공약 반대와 업무보고 유예)둘 다 이례적인 일인데, 처음 도발한 것은 박범계 장관"이라며 "일단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장관이 (공약에) 반대한다 그런 얘기는 예의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또 "공약의 문제점과 장·단점을 취합해서 공약이 국정 과제로 최종 선정되기 전에 밝힌 건 밝히고 협조할 건 협조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업무보고 유예가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완수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검찰개혁위원회 위원 출신인 한 변호사는 "(박 장관이) 장관을 떠나 민주당 정치인이니까 그런 거다"며 "민주당에서는 계속 검찰개혁의 구실을 놓지 않고 있으니 거기에 대한 견제도 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법조계는 다만, 인수위가 법무부 업무보고를 제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수위가 이날 긴급기자회견에서 업무보고 '취소'가 아닌 '유예' 사실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은 "다음주 화요일(29일)까지 법무부 업무조정은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도 이날 서울 통의동 인수위 천막 기자실을 방문해 "박 장관의 입장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업무 보고는 법무부와 일정을 조율해서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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