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했던 주주들에게 제시된 주식매수가격이 낮게 산정됐다는 대법원 결정이 나왔다. 당시 삼성물산이 제시한 주식매수가 5만7234원(1주당) 보다 16% 가량 높은 6만6602원이 적당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14일 일성신약 등 주주들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주식매수가격 결정 사건 재항고심에서 적정 삼성물산 주식매수가를 6만6602원으로 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제일모직의 신규 상장으로 합병이 어느 정도 구체화된 이후 구 삼성물산 시장주가는 합병의 영향으로 공정한 가격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일성신약과 삼성물산 양측 재항고를 모두 기각했다.
그러면서 “합병 관련 이사회 결의일 전일 무렵은 구 삼성물산 주식의 공정한 매수가격을 산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합리적이지 않다”며 “신청인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점으로서 이 사건 합병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때는 이 사건 합병 가능성이 구체화된 제일모직 신규상장 무렵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2014년 12월 제일모직이 상장하던 시점을 매수가 산정 기준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은 상장사 합병 시 합병 관련 이사회 결의일의 전일을 기준으로 주식매수가격을 산정하도록 정하고 있으나, 합병이 공시되기 이전부터 다수의 금융투자업자들이 특정 대주주(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상장사 사이의 합병 및 그로 인해 주가변동 가능성을 언급한 조사분석자료를 작성함에 따라 합병 관련 이사회 결의일 전일의 시장주가가 합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면 합병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다른 시점을 기준으로 주식매수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원심은 구 삼성물산이 이재용 부회장 측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실적을 부진하게 했다거나 국민연금공단이 구 삼성물산의 주가를 낮출 의도로 구 삼성물산 주식을 지속으로 매도했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므로 이를 판단의 근거로 삼은 점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은 일성신약 측에 309억원 가량을 더 지급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일성신약이 보유한 주식 330만7070주를 주당 5만7234원로 계산하면 1893억원이지만, 주당 6만6602원으로 계산하면 2202억원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일성신약 주주는 다른 주주보다 1주당 9368원씩 삼성물산으로부터 더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
삼성물산은 2015년 7월 이사회를 거쳐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 합병을 결의했다. 당시 일성신약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 의사(주식매수청구권)를 표시했다. 이에 삼성물산은 주당 5만7234원의 주식매수청구권을 제시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의 주식을 회사가 되사주는 것을 말한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합병을 위한 이사회결의일(2015년 5월26일) 이전의 일정기간(1주일, 1개월, 2개월) 시장주가를 산술평균한 가격을 주식매수가격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후 삼성물산이 제시한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은 일성신약 등은 법원에 가격조정신청을 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자본시장법 및 그 시행령에서 정한 대로 합병 관련 이사회 결의일 전날(2015년5월25일)의 시장주가를 기초로 주식매수가격을 산정했다”며 주식매수가를 주당 5만7234원으로 결정해 삼성물산 측 손을 들어줬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이 산정한 주당 5만7234원보다 9368원 높은 6만6602원이 적정 가격이라고 결정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합병 관련 이사회 결의일 무렵 구 삼성물산의 시장주가는 구 삼성물산의 객관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보다 앞선 제일모직 신규상장일 전일(2014년 12월17일)의 시장주가를 기초로 주식매수가격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일성신약을 대리한 법무법인 LKB&파트너스 신재연 변호사는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계열사 간 합병이 악용되는 경우가 많고, 그 경우 소수주주들은 지배주주가 이익을 본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였다”며 “이번 대법원 결정을 계기로 소수주주의 권익이 보호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삼성 서초 사옥.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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