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1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막아달라는 검찰의 요청에 다소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박 장관이 현재 입법을 강행 중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소속으로 부담스러운 위치에 있음에도, 국민 신뢰를 얻고자 하는 일선 검사들의 진정성에 답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밤늦게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에 박 장관이 출석해 더불어민주당과 검찰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상으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 장관은 이날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전국 고검장과의 회의를 마치고 만난 취재진에 "도와달라, 역할을 해달라(는 고검장들의 요청에는) 깊은 고뇌가 필요할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장관의 역할론을 말하는 검찰에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물었다"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다. 오늘 오전 급히 결정된 이날 회의에서 박 장관과 전국 6대 고검장들은 3시간 넘게 의견을 교환하며 서로 입장을 좁혀간 것으로 풀이된다.
박 장관의 입장에 변화가 생긴 것은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와 부장검사 대표회의에서 나온 '반성'의 목소리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일 진행된 전국 부장검사 대표회의에서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측면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점에 대해서 깊이 반성한다"는 표현이 박 장관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연이은 회의에도 관련 대안을 내놓지 않는 검찰 수뇌부에 "답답하다"는 표현까지 했다. 박 장관은 "검찰의 중추인 부장검사 회의에서 반성이라는 표현을 보고 정말 놀라기도 했고 그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 고검장들도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박 장관의 말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장관은 고검장들에게 수사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진정성을 국민들께 보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재차 설명했다. 박 장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마지막까지 수사권을 행사하는 이상 법안의 논의와 관계없이 검찰에게 부여된 수사의 공정성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렸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처리 움직임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전국 고검장들과 만나 이 사안을 두고 논의할 예정인 21일 오후 조재연 부산고검장(왼쪽부터), 여환섭 대전고검장, 김관정 수원고검장, 조종태 광주고검장이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고검장들과 박 장관은 검찰 신뢰를 회복할 구체적인 방안도 논의했다. 대검찰청은 이날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방안을 특별법 형태로 국회에 전달했고, 이를 박 장관과도 공유했다. 박 장관도 검찰 내부를 통제할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제시했다. 검찰이 준사법기관으로서 수사권을 유지하고 싶다면 자체적으로 수사 공정성 제고 방안을 마련해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박 장관은 "외부 통제도 중요하지만 내부 통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이날 논의한 '검찰 수사의 공정성·중립성 확보 방안'을 국회 법사위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박 장관은 "일종의 이의제기권"이라며 "검찰 내부에서 수사를 심사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귀띔했다. 검찰이 제시한 특별법과 박 장관의 프로세스가 검수완박의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도 검수완박 법안에 대안·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이 대안이 힘을 얻을 가능성도 커졌다.
다만, 박 장관이 결심을 확실히 세운 것은 아니다. 박 장관은 "제가 지금 행정부의 장관으로서 국회라는 입법권을 가진, 고도의 자율성을 가진 의회에 (의견을 표한다는 것은) 어떻든 한계가 있다"며 "법안과 관련된 의견을 내놓는 것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의견을 법사위가 열리면 낼 수도 있다, 아직 확정 지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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