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삶' 준비하는 문 대통령…첫 만남은 '노무현'
"현실정치 관여 않고 보통시민 삶 살겠다"…자연과 함께 소박한 삶 소망해
국제적 영향, 제2의 김대중 '기대'도…"현실정치 관여 없다. 남북관계만큼은 예외일 수 있어"
2022-04-22 16:19:50 2022-04-22 16:19:50
지난 2018년 9월30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시 사저 뒷산에서 산책을 하던 중 저수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다음달 10일을 기해 문재인 대통령이 일반 시민으로 돌아간다. 문 대통령이 밝힌 퇴임 후 자신의 모습은 "잊혀진 삶", "시민의 삶"이다. 퇴임 이후 정치적 목소리는 최대한 자제하며 자연 속에서 평범한 삶을 살겠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감안, 김대중 전 대통령 사례처럼 각종 강연에 나서거나 대북 관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물론 청와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이 처음으로 퇴임 이후 자신의 모습을 밝힌 것은 지난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다. 당시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끝나고 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지난달 30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 대종사 추대 법회 행사 때 성파 스님과 차담을 가진 자리에서도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며 마음 속으로 그렸던 퇴임 후 소박한 삶의 모습을 털어놨다.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정치 현안에 일절 개입하지 않은 채 농사를 짓고 텃밭을 가꾸는 등 자연과 함께 하는 조용한 삶을 살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문 대통령이 식물에 워낙 조예가 깊기 때문에 소소하게 원예 활동을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낙연·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현 정부의 전직 국무위원들과의 오찬에서 양산 사저에서의 평범한 '촌로'로서의 삶을 소망했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잊혀진 삶을 살겠다고 했는데 은둔 생활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현실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보통 시민으로 살겠다는 의미"라며 "가까이에 통도사에 가고, 영남 알프스 등산을 하며, 텃밭을 가꾸고, 개·고양이·닭을 키우며 살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당초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재야 활동을 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평생의 인연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이 YS 발탁으로 제도권 정치에 들어설 때도 그는 멀리서 응원만 보냈다. 그러다가 노 전 대통령이 16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청와대에 합류했다. 민정수석, 비서실장 등을 거치며 이가 다 상할 정로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의는 번번이 반려됐고, 몸이 상할 대로 상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서실을 떠날 수 있었지만 탄핵 정국은 그를 다시 노 전 대통령 곁으로 불러들였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고 그는 정치와는 담을 쌓았다. 하지만 그의 저서처럼 '운명'은 그를 현실정치로 끌어들였고, 운명을 받아들인 끝에 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 대통령과 무척 가깝게 지냈던 한 인사는 "어찌보면 대통령은 원치 않는 문재인의 삶"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저 착한 사람이 정치로부터 받았을 스트레스는 상당하다"며 "퇴임은 오히려 문 대통령에 해방감을 안겨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말한 촌부로서의 "잊혀진, 자유로운 삶"은 이런 연유에서 나왔다.  
 
지난 19일 경남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에 건축 중인 문재인 대통령 사저 주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양산에 마련된 사저는 전직 대통령이 평범한 '촌로'로 지내기에 좋은 환경이다.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영축산 끝자락이자, 우리나라 3대 사찰인 통도사와 가까워 산책과 등산을 즐기기 좋다. 문 대통령은 잘 알려진 등산 애호가다. 자연을 벗 삼아 찾아오는 지인들과 어울리며 마을 공동체 속으로 스며들길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례적인 임기 마지막 국정운영 지지율을 감안하면 정치적 영향력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운명을 확인한 터라 정치적 목소리는 최대한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문 대통령의 퇴임 후 삶에 대해 "너무나 예측 가능하다"며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게 문 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들이 사저로 찾아오면 나와서 반기고 했지만 문 대통령은 그 정도도 안 할 것"이라며 "본인 말대로 잊혀진 시민으로 자연 속에서 소박한 삶을 살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최소한 남북관계에 있어사만은 대외활동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내놓는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재임 기간 맺어진 해외 정상과의 관계도 있기 때문에 해외 강연 요청들이 꽤 많을 것"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에 우리가 국제적인 정치 지도자를 못 가졌는데, 전임 대통령들 중에서 그런 분이 있는 것도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는 개인적 바람을 전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한반도 종전선언 등 남북 평화에 정성을 쏟은 만큼 해당 분야에 국한해서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날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을 통해 서로를 향한 변함없는 신뢰를 확인한 만큼 향후 문 대통령이 상황에 따라 대북 특사 등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예단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연합뉴스를 포함해 세계 7대 통신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퇴임 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대북 특사와 같은 역할을 요청받으면 수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라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반도의 평화, 통일 또 비핵화, 민족의 문제,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보통 국민의 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전직 대통령으로서 어떤 역할이 있다면 하실 수도 있지 않겠느냐"면서도 "그러나 거기에 대해 예단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퇴임 후 첫 행보는 다음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이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5월 대통령 취임 후 참석한 노 전 대통령 추모식에서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다"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임기를 마친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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